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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26) 경북 경산 성임초교 교사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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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26) 경북 경산 성임초교 교사 이호철

입력
2005.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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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고등학교부터는 도시에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낮엔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라도 다녀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공장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다니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 내내 일하고 나면 저녁에는 피곤해 쓰러져 자기 바빴다. 이를 깨물며 공부해 보려고 해도 몰려오는 피곤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하얀 칼라가 달린 까만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가지런히 묶은 여학생이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속울음을 참 많이 울었다.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반년만에 시골집으로 다시 들어와 농사일 거들다 다음 해에 농고에 들어갔다.

그 때 내가 왜 공부를 그토록 하고 싶어했나? 좀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농촌에는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해 보아도 가정 형편은 늘 쪼들리기만 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 도시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 구해서 고생스런 삶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생각에서 나온 몸부림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바르게 알지 못한 때다.

농고를 졸업하고도 제 때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또 한 해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리고 다음 해 어렵게 교육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다. 무엇이 참교육인지도 모르고 그냥 교육과정에 주어진 대로 교과서만 열심히 가르쳤다. 그 때 한 선배 선생님이 글쓰기를 열심히 가르치며 학급문집도 내고 여러 가지 학급활동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았다.

교실 창가쪽에는 늘 빼곡하게 화분을 키운다. 아이들의 눈도 마음도 늘 푸르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아, 나도 저 선배선생님처럼 글쓰기도 열심히 가르치고 학급운영도 잘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틈틈이 글쓰기도 열심히 가르쳤다. 처음 글쓰기 지도는 문예지도였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어른처럼 글을 잘 꾸며내어 완성된 작품을 얻느냐에 목표를 두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더욱 그랬다.

그러다 이오덕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의 진정한 글쓰기 지도는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글쓰기는 아이들을, 자신의 삶 모습을 진솔하게 쓰게 하면서,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데 목표를 두는 것이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 쓸 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 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소박하고 솔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할까? 풍부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할까?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게 할까?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할까? 창조하는 태도를 가지게 할까? 이런 것이 목표가 되고, 글쓰기는 그 목표를 이루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의 글쓰기 정신이나 방법이 담긴 책과 선생님이 지도한 아이들의 글을 보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글쓰기 관련 책들도 끊임없이 살펴보며 공부를 했다. 그러며 지어내는 ‘글짓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좀 더 쉽게 삶이 있는 ‘글쓰기’를 하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실천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살아 있는 글쓰기’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선생님이 말한 글쓰기 정신 바탕에 구체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해오다 보니 글에 나타난 아이들의 삶 문제도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ㅐ犬?사회에서 어른들로부터 온갖 방법으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사랑만 줄 것 같은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이 뜻밖에도 매우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부모는 학대하는 지도 모르고 아이는 학대받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들 가운데도 먼저 부모들부터 깨우치게 해야겠다 싶어 내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나는 일상으로 지도해오던 아이들의 그림 지도에도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다 같은 사물을 놓고 그리는 데도 아이들의 그림이 비슷하다. 자기 눈으로 본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관념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그 관념을 깨트리고 자기 눈으로 보며 자기의 개성을 살려 그리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찾아낸 방법이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 모습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먼저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바탕 위에 다시 잘 표현할 줄 알아야 창조성이 일깨워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눈은 사물을 보면서도 관념화한 그림을 본 따서 그린다든지 자신의 머리 속에 틀 박아둔 그 모습을 그린다. 그러니 개성이 살아있는 그림이 될 수가 없다.

뒤에 안 일이지만 내가 찾아낸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 지도 방법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다. 누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술과 교수 베티 에드워즈(Betty Edwards)의 지도 원리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티 에드워즈가 낸 책 두 권을 읽어보았다. 나는 여기서 또렷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면 고쳐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그 다음,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행해 보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실행해 가는 가운데 줄기가 서있는 하나의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는 것. 또 그 방법이 다시 하나의 원리가 된다는 것을.

그 다음에 내가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숙제다. 숙제라면 늘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달달 외우며 복습하고 배울 것을 예습하며, 또 문제를 푸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교에서도 하루 내내 틀에 박힌 교과 내용을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그런 숙제를 하고, 학원 가서도 또 그런 공부를 해야 하니 아이들이 숙제에 대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재미있게 하는 숙제는 없을까, 그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재미있는 숙제’다. 아이들의 삶 속에서 즐겁게 활동하며 깨달음을 얻는 숙제다. 냇가에서 예쁜 돌 세 개 주워오기, 주워 온 돌 제자리에 갖다 놓기, 식구들 발 본뜨기, 봄나물 캐어 반찬 만들어 먹어보기 이런 것들이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아이들의 참된 삶을 생각하면 학급운영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앞에 말한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살아있는 교육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기록하고 실천하다 보면 새로운 좋은 방법이 생긴다. 새로운 방법을 하나 찾아내었을 때의 성취감은 얼마나 클지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보편 교육이지만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그 위에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어 보아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는 건 모두 잘 알 터이다. 초등 교육이 아이들의 장래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나에게 기초교육을 두 가지로 말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겠다. 먼저 참사람의 바탕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참사람이 되는 교육은 하지 않고 지식만 잔뜩 머리에 집어넣으면 그 고도의 지식을 어디에 쓸까? 엉뚱하게 쓸 수밖에 없다.

지식을 엉뚱하게 쓰면 사회에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신문만 보아도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기사가 실리지 않는가. 다음은 기초가 되는 능력을 튼튼히 길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창조력의 싹이 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크게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는 옆 돌아보지 않고 조그만 길이 보일 때까지 집중하는 편이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이니까 어린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아야겠지. 그러니까 나의 공부는 어떻게 하면 어린 아이들에게 기초 교육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이 어린 아이들을 잘 가르칠 궁리는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높은 직위로 빨리 승진할까, 하는 것들에나 관심을 더 가진다면 그게 어디 옳은 선생이랄 수가 있겠나.

어느 곳이나 다 그렇겠지만 가치관을 잘못 가지고 있거나 잘못된 관념을 깨트리지 못해서 옳지 않는 생각이나 옳지 않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나. 그걸 깨트리려면 끊임없이 깨어 있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깨어 있어야 올바르고 새로운 교육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30년이나 되도록 어린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모자라는 점이 아주 많다. 그래서 언제나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

■ 이호철 교사는

이호철 교사는 초등학교 교육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책을 펴내 ‘초등교육 분야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교육적 성과를 냈다’는 평판을 듣는 저술가이다.

어린이들의 살아있는 글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농촌 어린이들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을 담은 ‘비오는 날 일하는 소’ ‘공부는 왜 해야 하노’ 같은 책을 펴내는가 하면 이 같은 글쓰기 과정을 일깨우는 책 ‘살아있는 글쓰기’, 보이는대로 그리게 가르친 결과 어린이의 그림이 놀랄 정도로 표현력을 찾는다고 알려주는 책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 숙제로 달라지는 교육을 다룬 책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을 내놓았다.

195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성주 농고를 거쳐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했다. 75년 11월 이래 울진 경산 청도의 여러 학교에서 어린이를 가르쳤다. 그의 교실 급훈은 ‘참, 사랑, 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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