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당혹스럽다. 분명 지구상에 없는 존재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구석이 많은 물건이다. 사람 닮은 코에 쥐 같은 뻐드렁니, 개구리 발가락에 머리털은 대머리를 방불케 한다. 큼직한 눈은 파리 눈인 듯도 싶고. 품 안에 안긴 새끼는 빨간 피부가 영락 없이 갓난쟁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 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40)의 전시회(2~24일) 중 ‘새끼’에 대한 세평을 요약하면 이렇다. 돌연변이로 탄생한 기괴한 생물체 같은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재료는 실리콘, 유리섬유, 짐승의 가죽, 사람의 털 등을 사용했다. 사실감이 지나쳐 혐오감마저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엽기적인 작품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피치니니는 최근 홈페이지(http://www.patriciapiccinini.net)에 올린 글에서 전시 작품 전체에 대해 ‘진화되지 않은 돌연변이적 속성을 지닌 생명형태ㆍLifeform with Unevolved Mutant Properties)’라고 명명하고 약칭을 LUMP(럼프ㆍ덩어리)라고 했다.
“이 ‘덩어리’는 일부는 사람 살이고, 일부는 생명공학이고, 일부는 대중문화이고, 일부는 마케팅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 사랑스럽지 않겠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소중한 존재이지요.”
그의 작품 세계를 복제 등 현대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리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작년 4월 사람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한 일가족 조각을 내놓은 전시회 때 피치니니는 호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을 보시면 유전자 변형 생명체입니다. 새끼들도 있지요. 돼지와 우리에게 똑 같은 유전자 선조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같은 가족의 일부이지요. 부분부분을 보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일부가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는 양상이 좀 다르지요. 친숙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다릅니다.”
피치니니는 자기 나라에서보다 세계에서 먼저 각광을 받았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호주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가해 “영국 여성작가 메리 셸리의 소설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과 유사한 생명체 조각”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평론가들을 포함해 하루에 수백 명씩 호주관을 찾아와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사진을 찍어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기는 하지만 지적인 시각으로 인간화됐으며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롭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올 3월에는 미국 뉴욕의 화랑가 소호에서 어린 아이를 돌연변이 생명체가 끌어 안고 있는 실물 크기의 수지(樹脂)상이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피치니니씨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나 7살 때인 1972년 호주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처음에 경제사를 전공했지만 89년 멜버른 빅토리아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미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의 관심은 ‘자연과 인공의 관계’에 초점이 모아졌다. “제 작품은 (생명공학과 같은) ‘당신은 현대 기술의 성공을 좋아하는 만큼 그 실패도 좋아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 것입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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