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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결혼식에서 밥 굶는 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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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결혼식에서 밥 굶는 주례

입력
2005.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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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연세가 들어 완전히 은퇴를 했지만, 10년 전만 해도 아버지는 강릉 지방에서 꽤 알아주던 ‘주례슨상님’이었다. 서울에 올라오니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주례로 인기가 있던데, 서로 얼굴뿐 아니라 사는 모습까지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지방의 주례 사정은 또 다르다.

아버지 친구 가운데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도 예전에 주례를 참 많이 보셨다. 그러다 어느 해 가정에 몇 가지 우환이 겹쳐 든 다음 절대 주례로 나가지 않으셨다.

서울에선 그런 걸 가리지 않지만 지방에서는 함을 팔러 갈 때 함진아비를 꼭 아들을 낳은 친구에게 맡기는 것처럼 주례 역시 이런저런 사정을 가려 부탁한다. 주례 역시 자신이 주례를 보기로 한 결혼식 전날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상을 당해도 문상을 피한다.

그러나 그 시절 아버지는 주례를 보러 갔다가 점심을 굶고 오는 날이 많았다. 결혼식 날 제일 바쁜 사람이 신랑 신부이고, 그 다음 바쁜 사람이 바로 혼주인데, 주례야말로 이날 제일 바쁜 신랑신부와 혼주가 안 챙기면 점심을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례를 보러 가는 날이면 어머니가 혹시나 해서 집에 아버지의 점심을 늘 따로 챙겨두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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