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소진되어버린 이야기들을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억지로 늘여서 쥐어짜가며 연기할 자신이 이젠 없습니다. 회마다 바뀌는 캐릭터를 더 이상 연기할 자신도 없습니다.’
SBS 수목드라마 ‘루루공주’가 주연인 탤런트 김정은이 10일 자신의 팬 카페에 드라마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그 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당초 ‘루루공주’는 2004년 시청률 50%를 넘긴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과 영화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등으로 인기를 모아온 정준호를 투 톱으로 내세우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제목이 김정은을 전속 모델로 기용하고 있으며 드라마의 협찬을 맡은 웅진 코웨이의 비데 상품(룰루 비데)과 유사하고 찬호(김흥수)가 극중에서 비데 시판에 나서는 장면이 포함되는 등 무리한 간접광고(PPL)로 인해 시청자들로부터 ‘비데 공주’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에 드라마 자체의 품질 관리도 실패했다. ‘루루공주’에서 김정은이 맡은 재벌가의 손녀딸 희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떡볶이를 먹어보지 못했고 도무지 남을 미워할 줄도 모르는 비현실적 캐릭터로 그려졌다. 또 제작진은 바람둥이 재벌2세인 우진(정준호) 캐릭터에 뭇 여자를 홀릴 만한 매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이런 희수와 우진의 납득하기 힘든 사랑이 계속되면서 드라마의 극 초반 20%를 상회하던 드라마의 시청률은 10%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탓에 연출자와 출연진 모두가 작품의 방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드라마 시작 이후에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화를 불렀다. 촬영 당일에야 조금씩 대본이 나오는 ‘쪽대본’ 관행과 당일치기 제작 시스템의 한계가 다시 한번 드러난 것. 실제 김정은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책임이 있다면 대본 1, 2회 분량만을 받은 채 너무나 촉박한 시일 안에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응했던 제게 다 돌아가야 겠죠’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심경 고백으로 파문이 일고 SBS와 ‘루루공주’의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이 사태수습에 나서자 김정은은 남은 6회분에 촬영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 드라마의 병폐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천정 부지로 치솟고 있는 톱 스타들의 몸값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무리한 간접광고에 나선 외주제작사와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이를 묵인하고 있는 방송사로 인해 드라마의 품질이 저하되고 있는 악순환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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