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중국이 연안 일부 지역을 비롯해 시장 자유화를 도입하기 시작하자 세계의 주요 기업들은 이 거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로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 시장의 급격한 팽창은 우리 기업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유치 전략과 저렴한 인건비, 중국 자체가 하나의 거대 시장이라는 기대감으로 많은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합작 형태로 진출했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 채 20년도 못돼 국내의 각종 경제연구소, 정부 관료, 기업가들은 “중국은 거대한 코끼리이다”, “기술 수준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 “정보통신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다. 표현은 다를지언정 중국이 이미 우리 산업 수준에 근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올 8월 중국 내륙의 교통 중심지인 우한(武漢)시에 있는 광(光)밸리에 초대되어 1주일간 후베이성 주요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 동안 업무 관계로 자주 들르던 상하이 등 중국이 전략적으로 집중 관리해 온 연안 지역뿐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눈부시게 변해 가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했고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중국뿐만 아니라 잠비아와 같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기술 도입 열기도 뜨겁다. 작년에 배낭 여행차 들렀던 잠비아에서는 신문마다 ‘혁신’이란 단어가 넘쳐 났다. 그들의 신기술 도입 열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세계는 눈부신 속도로 단일 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기술 격차도 점점 좁혀지고 있다. 벤처기업이란 용어는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상품화하여 세계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우리 벤처 기업인들의 모습은 한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이전에 아이디어가 도용당하는 사례가 많아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모르는 사이에 첨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데 정작 본인들은 한참 뒤에야 기술을 빼돌린 업체가 먼저 상품을 출시하고 시장을 선점한 것을 알고 애통해 한다.
각종 정부 기관이나 대학의 산학협력단이 해외 전시회나 기술 교류를 주관하면서 상품화에 이르지 못한 벤처기업의 기술을 무분별하게 전시하도록 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산업 보안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견 이상 기업들은 회사 내에 보안 관리 부서를 두고 상품화 단계와 제품 발표 시기, 기술 이전의 범위와 순서를 통제하고 있지만 벤처기업은 이 같은 기술 보안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은 늦은 감이 있지만 하루 빨리 제정되어 기업의 기술 보호 활동을 지원하고 외국 기업의 인수ㆍ합병에 의한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한다. 또 국가정보원이 나서 첨단 기술 보유 벤처기업에게 산업 보안 실무지식을 전파하고 효율적인 보안 관리 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힘들게 개발한 첨단 기술은 국부 창출의 원동력이다. 정부 기관이 벤처기업들과 함께 첨단기술 유출을 미리 막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부를 오랫동안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될 것이다.
임채환 대전시 대덕밸리 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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