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대학 내에서 휴대폰 감청장비(카스·CAS)를 이용, 불법도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은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산업스파이, 대공혐의자 등을 대상으로 감청장비를 활용해왔다고 밝힌 바 있으며, 검찰 수사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상당부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소식통 A씨는 8일 “국정원 대공담당 직원들이 2001년 초 서울 B대학에 CAS 장비를 장착한 차량을 타고 수시로 출입하면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대학 내에서 숨어 지내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간부 등을 광범위하게 도청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 같은 내용을 “국정원의 전·현직 담당직원으로부터 수 차례 직접 들었다”며 “국정원 직원들은 CAS 장착 차량을 ‘그 분’이란 은어로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그 분’이 특정 시기에 특정 대학만 출입했던 것은 아니며 캠퍼스 내에 수배자가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어느 대학에나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CAS를 이용한 캠퍼스 내 불법도청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증언이다.
이렇게 불법도청으로 수집한 자료는 국보법 위반자 검거나 관련 정보보고서 작성에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CAS가 국보법 위반 혐의자들을 검거하는 데 많이 기여했다는 말을 담당 직원에게서 여러 차례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CAS 장비를 이용하고 싶은 다른 부서 직원들은 과학보안국 직원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돈을 주고 비공식적으로 빌려서 사용하기도 했다”며 과학보안국은 장비를 개발·관리만하고 다른 부서 직원들이 빌려서 운용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사용신청서나 감청영장 신청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정원은 “휴대폰 감청은 불가능하다”며 휴대폰 감청장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이 때문에 법원 등에 제출하는 합법적 감청신청서에 휴대폰 번호를 넣어 감청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휴대폰 감청장비 CAS는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실무자들을 불러 CAS를 이용한 불법도청 실태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 중”이라며 “그 시기에 차장과 국정원장을 지냈던 사람들도 소환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1999년 12월 CAS 20세트를 개발해 2001년 4월까지 사용하다가 CDMA-2000 기술 도입에 따른 기술적 한계로 2002년 3월에 폐기했으며 과학보안국도 2002년 10월 해체했다고 밝혔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박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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