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소개령이 내려진 7일(현지시간) 뉴올리언스시 외곽 매터리 구역.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아파트를 찾은 권오수씨는 악취를 풍기는 고깃덩이와 채소를 냉장고에서 걸러내다 느닷없이 치미는 눈물을 추스르지 못했다.
뉴올리언스대학 근처 다운타운에 있는 세탁소는 여전히 흙탕물에 잠겨 있어 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10년 넘게 쌓아온 ‘아메리칸 드림’의 작은 탑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는 엄연한 현실이 축축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뚜렷하게 실감됐다.
목숨은 건졌다는 안도감은 잠시 뿐이었다. 카트리나 피해지역의 한인들의 시련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특히 흔한 보험하나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안간힘을 썼던 권씨 같은 동포들에게 이번 사태는 감당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생업에 복귀하기까지 걸릴 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진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물을 퍼내려면 최소 2~3개월이 걸리고, 습기를 말리고 수습을 하는데 다시 수개월이 소요될 전망이어서 언제쯤 도시기능이 회복될 지 막연하다.
현지 이상호 카트리나 피해대책위원장은 “한인 가운데 몇 분은 거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나머지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해 그렇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세탁소나 이.미용실, 청과물가게 등을 운영했던 서민 동포들로서는 6개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도선고’나 마찬가지다. 김성대 배턴 루지 한인회장은 “많은 한인 이재민들이 직장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며 하루아침에 ‘난민신세’가 되어버린 동포들의 고통을 전했다.
미국 전역의 한인회와 종교단체 등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고, 재해대책본부가 차려진 배턴루지 한인교회 등에는 담요 옷 라면 등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절실한 것은 생필품이나 옷가지 같은 비상 구호품이 아니라 재기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금지원과 법률자문 등이다.
권씨는 “당장 피해보상 청구 절차 등을 도와줄 법률 자문이나, 영업재개를 위해 필요한 금융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배턴 루지 한인회장도 “구호품도 소중하지만 이재민들에게는 현금이 훨씬 유용하고 절박하다”고 말했다.
13일부터 열리는 세계한상대회에 참석차 귀국 길에 오른 이 위원장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곳 뉴올리언스의 사정을 제대로 알리려고 간다”며 “기회가 닿으면 정부나 사회단체 등에 재기를 위한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올리언스=한국일보 미주본사 김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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