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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고치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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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고치와 고추

입력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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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숙제로 심훈의 ‘상록수’를 읽던 아이가 책을 들고 내 방에 와서 묻는다. “누에 한 장이라는 게 뭐예요?” 저 아이는 누에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누에고치도 본 적이 없다. 누에와 누에고치에 대해 한참 설명한다. 누에고치에서 나온 나방이 알을 낳는다. 한 장 정도의 알을 받아 키우면 나중에 열 말 정도의 고치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예전 같으면 가을누에를 한참 키울 때이다. 누에는 봄과 여름 두 번 친다. 봄누에를 치면서 잎을 죄다 따낸 뽕나무에서 여름 늦게 잎이 나오고, 그러면 그 잎으로 가을에 다시 한번 누에를 칠 수가 있다.

해마다 보면 봄누에는 단오 때가 막바지이고, 가을누에는 추석 때가 막바지다. 단오와 추석이 늦게 들지 않으면 그렇다. 예전에는 그렇게 누에를 쳐 고치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어머니가 우리들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다.

대학 등록금은 예전 한 때 ‘우골탑’이라는 말이 났던 것처럼 소를 팔아(보다 더 예전에는 농토를 팔아) 마련해 주고, 그 보다 적은 중고등학교 등록금은 고치를 팔거나, 감자를 팔 거나, 쌀을 팔거나, 빨갛게 말린 고추를 팔아 마련해 주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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