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뒤숭숭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불법도청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이어 20여명의 직원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 특히 한 직원이 국정원 내부통신망에 현 상황을 개탄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전례없는 일도 벌어졌다.
불만과 비판도 그렇지만 직원들 사이에 의기소침과 사기저하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8일 “당시 감청을 담당했던 8국 실무자들이 소환돼 조사 받으면서 ‘국가를 위해 일을 해왔는데 왜 검찰에 소환까지 돼야 하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며 “이들은 ‘우리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검찰에 소환된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합법적인 감청만 했을 뿐 불법도청은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안다”며 “검찰에 갔다 온 직원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달 말에는 내부 통신망에 한 직원이 국정원이 처한 상황을 개탄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이 직원은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이 지경이 돼야 하느냐. 숙명적으로 완벽한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정보기관의 특수성이 감안돼야 한다”는 항변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활동은 국익이라는 관점도 고려해야지 흑백의 시각만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글은 직원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불법도청을 고백한 지도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정보위의 한 여당 의원은 “국정원 지도부가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고 뚜렷한 증거없이 서둘러 고백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많이 제기되는 것으로 안다”며 “실제 검찰 조사에서도 불법도청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검찰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일선 요원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한 요원은 “국내파트 폐지ㆍ축소론이 나오는 등 뒤숭숭해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하루 빨리 사태가 마무리 되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공보관실은 “일부 불안과 불만 기류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살점을 떼내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난국을 극복해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자는 것이 주된 인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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