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강원 고성군의 통일 전망대는 자연의 금강산을 윤곽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남한땅이었다. 아스라이 넘실대는 산봉우리들의 물결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이었다.
감동의 흐름은 바다로 이어진다. 푸른 바다위로 길게 뻗어나간 하얀 바위 군상들은 이름하여 ‘말무리 반도’. 곧 바다의 금강, 해금강이다. 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내닫는 한 무리의 말을 그대로 닮은 곳. 거친 호흡,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릴듯한 그 광경.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기에 더욱 아련했고 신비로웠다. 갈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을 때였다.
그러나 1998년 문이 처음으로 트이고 난 뒤 금강산 관광은 누구든 실현 가능한 꿈이 됐다. 작년이 다르고 올해가 다르다.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녘의 땅을 달리는 길가. 메부수수한 머리, 구릿빛 피부의 어린 아이들이 말간 눈 가득 미소를 담고 손을 흔들어 준다. 동네 꼬마들도 남쪽에서 매일 들어오는 관광 차량 행렬에 익숙해진 듯.
해금강 가는 길 보이는 넓은 들판은 말 그대로 ‘평야’였다. 사방이 논으로 가득했고 알알이 가득 낟알이 제법 여물어가면서 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저 곳을 주림의 땅이라 했나.
해금강은 휴전선과 가까운 북의 민통선에 자리 잡아 금강산 관광에서도 통제가 가장 심한 곳이다. 관광객에게 오전에만 한 차례(9~10시 사이) 잠시 문을 연다. 버스에서 내려 바다로 성큼 다가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산에서 봤던 그 바위들은 물을 만나더니 어느새 섬으로 변신해 흩어져 있다. 해송과 어울려 펼쳐진 기암 절벽과 바위 섬들. 영락 없는 바다의 금강산이다. 시멘트 지붕을 이고 서 있는 해변의 정자 옆에 커다란 바위 산이 뚝 떨어져 서 있다. ‘바다 만물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 너머 북쪽으로 기암 절벽은 장대한 규모로 펼쳐지지만 거기까지다. 북한군의 초소 등 군사적 시설이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의 렌즈를 그 쪽으로 돌릴 수 없다.
그 절경은 해안선을 굽이쳐 돌아나가 통천 총석정까지 이어졌을 텐데. 지금은 군사 시설 따위로 가로 막혀 있다. 아쉬움은 바다 만물상을 한 바퀴 돌아 나올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금강의 산하는 변함 없건만 분위기와 시설은 크게 달라졌다. 지난달 31일 해금강호텔 맞은편 언덕에 96실의 객실을 갖추고 문을 연 ‘금강산 비치 호텔’. 통나무 목조 건물로, 흡사 펜션 같은 아늑한 휴식 공간이다. 온정각 휴게소 맞은편에는 제 2의 온정각 ‘온정각 동관’도 1일 개장했다.
다양한 메뉴의 푸드 코트와 커피숍이 들어서 있고 곧 호프 광장과 대형 면세점 등이 입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온천과 호텔 등을 잇는 금강산 관광 열차(무궤도 열차)도 선보였다.
금강산의 변화 중 가장 큰 관심 거리는 역시 1일 개점한 평양 옥류관의 금강산 분점 개장. 평양에서만 맛볼 수 있다던, 냉면 맛의 원조라는 그 유명한 옥류관 냉면을 금강산에서 먹을 수 있게 됐다.
푸른 기와의 단아한 건물도 평양의 옥류관 모습 그대로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 내부는 벽화의 북한의 유명 화가 22명이 60일간 그렸다는 금강산 절경들로 화려하다. 냉면 한 그릇 먹고 옥류관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금강산 유람은 다 하는 셈이다.
평양 옥류관에서 요리사와 여성 접대원이 파견 나와 맛도 서비스도 평양 그대로란다. 어여쁜 여성 접대원에게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물었더니 냉면을 먹기 전에 국수 위에 띄워 놓은 계란을 먼저 들란다. 입 냄새를 없애 주기 때문이라고. 식초는 육수가 아닌 면에 뿌려야 육수의 제 맛이 흐트러지지 않을 뿐더러 면에 스며드는 식초 덕에 면발도 쫄깃해진다고 또 귀띔이다.
녹두지짐과 함께 나오는 냉면은 12달러, 쟁반냉면은 15달러다. 곧 타조 불고기, 소고기 자연 송이 볶음 등의 메뉴도 선 보일 예정이다.
금강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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