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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화충격과 공공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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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화충격과 공공불감증

입력
2005.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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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생활에서 한 두 가지 문화충격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중에도 두고두고 기억되는 일화들이 있다. 저녁 9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시내 산책 도중 마주친 독일 노인은 이 늦은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다니 하며 핀잔을 준다.

10시도 안됐는데 하고 지나쳤지만, 나중에 안 사실, 독일인처럼 아이를 일찍 재우는 사람들도 없다. 선해(善解)하면 그 만큼 어린이를 잘 보호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치고 헬멧과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차지 않은 아이는 드물었다. 병원, 관공서, 영화관을 가리지 않고 새치기 없이 길게 서서 끈기 있게 기다리는 모습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반면, 질서국가라지만, 공원이나 캠퍼스 도처에 개똥과 담배꽁초가 즐비한 광경, 사람이 우선이라며 무단횡단을 예사로 여기는 태도 등 의외의 놀라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충격은 오히려 귀국 후 더 심해졌다. 어린 아이를 앞 좌석에 태우고도, 아이가 일어나 뒷좌석 가족과 장난을 쳐도 태연한 운전자의 모습에 섬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아이들이 헬멧도 안 쓰고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쏜살같이 건너곤 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이 무모한 안전 불감증,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선진국과 대비되는 무질서

운전 중 창 밖으로 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누가 뭐라 할 것 같으면 무슨 상관이냐며 눈을 부라리는 오기를 보며 자기 나라에 살며 겪는 문화충격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화물차 운전자가 창 밖으로 턴 담뱃재가 도로 날아 들어오는 바람에 마주오던 승합차와 충돌해 사람이 죽고 다친 사고도 있었다.

위험천만한 담뱃재가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어째서 사람들은 좁은 승용차 좌석에 숨어 바깥이니 상관없다며 마구 담뱃재와 꽁초를 버리는 것일까.

우리를 더욱 아연실색케 하는 것은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던 인근 공터에 화장장이나 쓰레기 처리시설 같은 걸 지으려 하면 악을 쓰고 막아서는 이중적 공간 의식이다.

땅값이 떨어지는 등 손해가 따를 수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은 그리 손해가 확실치도 않고 공익을 위한 일인 줄 알면서도 단지 자신에게 별 득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반대를 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공(公)은 실종되고 사(私)만 으르렁거리는 각박한 황야에서 서로 물고 뜯다 상처만 입히고 헐떡이는 승냥이들 같은 우리의 모습,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다시 정부 책임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과거, 정부의 약속이 배신의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사업으로 토지를 수용당한 소유주들은 보상의 혜택이라도 누렸지만, 세입자나 영세상인, 빈민들은 이주비 정도를 받고 몸담았던 삶의 현장에서 밀려나야 했다. 대차대조표는 참혹했다.

많은 경우 원주민들마저도 말미에는 개발의 혜택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개발이 확대될수록 그들은 윤택한 도시문명으로부터 멀리 내팽개쳐졌다. 그러니 제발 그냥 원래 살던 대로 놔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책임있는 개인주의로 가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건전한 공공의 공간이 멸실되기 시작한 것을 모두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주의가 자율을 전제로 한다면, 이제 책임 있는 개인주의로 가야 한다. 창 밖으로 담뱃재를 털고 나서 창문을 닫아 버리는 후안무치 무모한 자유는 이제 훌훌 털어 버리자.

남들이 다 그리 하더라도 자기만은 재떨이 안에 버려 절대 공공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도록 헬멧을 씌우고 보호대를 채워주자.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고 후손들에게 떳떳이 물려줄 수 있는 공공의 마당을 쾌적하고 건전하게 가꿔 나가야 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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