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때문에 난리고,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은 태풍 때문에 난리다. 몇 년 전 ‘루사’ 때 70평생 처음 그렇게 큰 비를 본 어머니는 날이 어두워지는데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면 큰 비든 작은 비든 겁부터 덜컥 나신다고 했다.
태풍이 동해상으로 완전히 빠져 나가고 나니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르고 높다. 바람도 이런 것을 산들바람이라고 부르지, 싶게 연하게 나무 이파리를 흔든다. 예전에 밭을 맬 때 틈틈이 이런 바람이 불어오면 시골 어른들은 얼굴과 팔만 시원한 게 아니라 ‘호미 자루까지 시원하다’고 말했다. 흙을 기름지게 하여 곡식을 가꾸는 시인들이셨다.
눈과 비는 가장 많이 온 해를 사람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바람이 가장 세게 불었던 때는 저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그것은 눈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에 맞섰던 자기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좁다란 논둑길을 형제가 바람에 맞서 몸을 구부리고 걸어오다가 한순간 더 강하게 바람에 둘 다 저만치 논바닥에 날아가 박혔다. 지금도 나는 태풍이 올 때마다 그 바람 생각이 난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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