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은 오빠 셋과 언니 하나를 둔 막내다. 그가 사진 에세이 ‘막내’(진디지털닷컴 발행)를 썼다.
이 책은 그러니까, 막내가 쓴 막내들의 이야기인 셈이고, 딩크족이니 핑크족이니 하며 아예 아이를 안 낳거나 하나 둘 낳고 마는 이 시절 마지막 막내세대에 보내는 연서다. 또 막내라는 호칭이 내포한 관계로서의 가족과, 막내를 품은 울타리로서의 가정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너도, 나도 얼마나 작은 몸집 속에서 시작한 존재들인지, 그 분꽃대롱 같은 작고 여린 뼈들이 얼마나 많은 잎과 꽃과 열매를 매단 한 그루 크다란 성인나무가 되는지, 사람을 그렇게 키워내는 가정이란 얼마나 드넓은 집이고 텃밭이고 평야고 산맥이고 바다인지를 되새겨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첫 아이가 유리그릇이고, 둘째가 사기그릇 같다면 막내는 ‘차지디 차진 찰흙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신경도 덜 쓰이고 편하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아이 키우는 게 일이라기 보다는 문득 새삼스럽고 재미있고 귀엽고 기쁜 성장의 재롱을 나날이 지켜보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막내라는 호칭이 ‘막무가내’에서 나왔다는 대목도 있다. 식구들 사이에서 통하던, 시인의 어릴 적 별명도 ‘깡패’였다고 한다. 일전의 어떤 모임에 친구들 손에 이끌려 와서는 지레 겁 먹고 입구에서 도피(!)를 감행했던, 낯 가림 심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가 ‘깡패’출신이라니.
책은 깡패처럼 군림해도 좋았던 막내들의 영토와 그들의 ‘짓’들을, 또 막내들이 감지했던 환경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존재감을 키워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다감한 어조로 전한다.
그는 이제 다 자란 아들을 둔 어머니다. 그 어른의 눈으로 ‘막내’를 본다. “막내는 어른들로 하여금 어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직접 다시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갓난아기 시절부터를 역체험 하게 한다.…고마워하게도 하고 뒤늦게나마 자기 자신을 고치게 하기도 한다”(130쪽) 그 막내들의 풍경에 “내가 써왔거나 낭비해 온 시간에 대한 자책이 촛불에 데이는 듯이 찾아 들었다”고 썼다. “뜨거운 촛농이 라일락 꽃잎처럼, 똑, 똑, 맨살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썼다.
책에는 사진작가 최영진씨의 “두 살에서 세 살로 넘어가는 보들보들하고 뽀독뽀독하고 말캉말캉하고 조물조물하고 맨들맨들하고 종알종알하고 칭얼칭얼하고 앙앙앙앙하고 까르르륵하는 막내”의 사진들이 잔뜩 실려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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