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국제유가의 흐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멕시코만을 강타하기 직전,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하면서 하늘까지 치솟아 오를 기세였다. 3차 오일쇼크가 눈 앞에 닥친 듯 했다.
하지만 시장은 요 며칠 새 언제 그랬던가 싶게 감쪽같이 갠 모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하고, 멕시코만 석유시설 복구가 시작됐다. 그러자 WTI 가격은 7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 정규거래에서 64.37달러까지 가라앉았다. 불과 2주 동안 배럴당 5달러 이상 크게 출렁인 셈이다.
그러면 이제 시장은 안정되고, 국제유가의 상승세도 가라앉은 것일까. 사용 에너지의 97% 정도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그렇게 믿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는 ‘수급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여전히 감돌고 있고, 유가 상승 요인도 도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수급 불안은 수요 폭증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공급이 한계에 도달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전세계의 하루 평균 석유 수요는 지난해 가을 8,240만배럴에서 최근 8,400만배럴을 넘어섰다. 반면 공급은 그 때나 지금이나 8,350만배럴 정도에 머물러 있다. 수요.공급량이 역전된 것이다. 1차 오일쇼크만해도 당시 ‘석유 무기화’를 내세운 산유국들이 담합을 풀고 공급을 늘리면 해소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공급하고 싶어도 생산설비나 생산 가능한 석유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사정이 전혀 다르다.
지구 곳곳에 스며있는 석유는 인류가 멸망한 뒤에도 남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얘기이다. 하지만 대부분 재래식 방법으로는 채굴이나 가공이 매우 어려운 ‘비재래식 석유(unconventional oil)’이다. 따라서 문제는 지금까지처럼 시추공만 박으면 비교적 저렴하고 손쉽게 채취가 가능한 ‘재래식 석유’의 양이다. 브리티시페트롤륨(BP)에 따르면 80년부터 2002년까지 중동 산유국들과 베네수엘라가 추가로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석유매장량은 3,730억배럴에 달한다. 하지만 시장은 끝없이 퍼내기만 하는데도 개발 가능한 매장량이 오히려 늘었다는 이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그저 산유국의 마음 속에만 있는 ‘페이퍼배럴(paper barrel)’일 뿐이라는 것이다.
간과되고 있지만, 석유 생산비용의 상승도 현실적으로는 중요한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사들이 기존 시추공에서 최대한의 원유를 뽑아내기 위해 리그(rig.시추설비)를 좀처럼 철수하지 않는 가운데 새 유정을 개발하려다 보니 리그 임대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멕시코만 심해 리그의 경우 90년 20만달러 선이었던 하루 임대료는 최근 40만달러로 올랐다. 여기에 철강을 비롯한 소요 원자재 값의 상승 및 산유국들의 로열티 인상, 기술인력의 절대부족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도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석유사의 비용 상승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인들도 국제유가가 최근 7년 동안 3배 이상 뛰어오른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석유산업 펀더맨털(기초여건) 보다도 변화한 시장 환경에 주목한다. 사실 국제투기자본이 몰리면서 2000년을 분수령으로 석유시장도 수많은 파생상품이 들끓는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부동산 투기가 적정가격과 무관한 허구적인 거품가격을 만들어내듯이 유가도 이제 수요.공급에 따른 고전적 가격흐름에서 이탈하게 된 것이다.
수급 불안과 석유 생산비용의 상승이라는 근본 악재 속에서 투기에 따라 허구적 가격이 미친 듯 널뛰는 카오스적인 상황.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석유시장의 현주소이자, 유가 흐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장인철 국제부 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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