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를 은유적 표현으로 쓸 때 그 연원은 아마도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떠올리면서 일 것 같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는 19세기 영국 소설가 디킨스는 서민과 지식인, 왕실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독자층과 호소력으로 당대는 물론 후대의 더 높은 평가를 누렸다.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사회 밑바닥의 생활상과 애환에 대한 생생한 묘사, 자본주의 발흥기 영국 사회의 부정과 모순을 비판하고 드러내되 유머를 잃지 않는 작풍(作風)을 지녔던 것으로 기록된다.
■당시 40대이던 그가 주간지에 연재했던 ‘두 도시 이야기’는 파리와 런던을 무대로 프랑스 혁명기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들과 삶과 죽음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이 소설을 ‘이도비화(二都悲話)’라는 번역명으로 접했었는데, 역자가 제목을 슬픈 이야기로 칭한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태풍 참사가 유독 흑인과 빈자들의 피해였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이 제목을 떠올렸다. 뉴올리언스가 사실은 백인과 부자들의 도시가 따로 있었던 두 개의 도시였다는 슬픈 사연을 신문들은 뒤늦게 전하고 있다. 디킨스의 두 도시는 엄연히 딴 나라의 도시들이었지만 뉴올리언스의 두 도시는 빈부와 흑백으로 갈리는 미국적 분열과 갈등, 소외의 현실 공간이다.
■작지만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유의 도시로 뉴올리언스는 묘사된다. 그러나 프렌치 쿼터, 버번 스트리트의 나지막하고도 자유분방한 낭만도 미국 노예시장의 발원지라는 역사를 지우지 못한다. 뉴욕의 흑인과 이 도시 흑인이 표정이나 눈빛부터 달랐던 첫 인상이 지금도 강렬하다. 체념과 순종이 몸에 밴 듯하면서도 깊숙한 분노를 뿜는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뉴올리언스의 이재민들은 태풍이 불러올 재해가 어떨 것인지 아예 알지도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도시를 빠져 나올 대책이나 수단도 없었던 절대 빈곤층이었다.
■우리의 도시들이라고 두 도시가 아니겠는가. 20대 80의 부익부 빈익빈 이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의 현상은 바로 우리의 ‘두 도시 이야기’다. 넘치는 실업,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번잡한 대도시의 소음을 더 한다. 뿐인가. 열이면 열번을 민생에 대해 얘기해도 시원찮을 판에 연정이니 개헌이니 하는 소란으로 여러 달을 보낸 우리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보니 두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두 나라의 문제를 말하는 듯 생각과 의견이 너무도 달랐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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