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31 대책 발표 후 부동산 시장이 폭격을 맞은 듯 조용해졌다.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지역은 동면에 들어갔고 토지시장은 거래가 아예 중단됐다. 강남 재건축 시장 곳곳에서 급매물이 증가하고 호가도 하락세다. 외견상 대책은 성공한 듯 하다.
그런데도 이 번 대책이 고질적인 투기를 일거에 잠재울 만병통치약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 적용대상 확대와 보유세 인상만 해도 그렇다. 집을 팔 때 집값이 많이 올라 살 때보다 많은 이득을 얻었다면 상응하는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도 소득세가 과하다고 투덜거릴 일은 아니다.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이 남들보다 더 많은 보유세를 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10억원이 넘는 집에 살면서 보유세는 자동차세 수준으로 낸다면 조세정의를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문제는 세금이 ‘부동산 죄인’에게 ‘벌금’을 매기는 식으로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부동산 대책의 목표를 다 주택 및 고가주택 소유자, 대규모 토지 소유자에 대한 응징으로 잡았다. ‘부동산 부자는 전 국민의 2%밖에 안 된다’며 의도적으로 부동산 편중 소유 현상을 강조해 부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집을 여러 채 가진 게 죄는 아닐 것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칭찬 받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정상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가진 자들의 조세 저항이란 부자를 죄인시하는 분위기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 성격이 강하다. 집값을 잡겠다는 것인지 부동산 보유 자체를 죄악시해 계층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금이자와 연금급여 등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10여년 이상 집 한 채 가지고 실수요자로 살아왔는데도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보유세 부담이 배로 뛴 봉급 생활자 등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퇴직금 몇 푼과 집 한 채 가진 ‘사오정’ ‘오륙도’ 퇴직자들은 또 어떤가. 이들에게 집을 담보로 매 달 생활비를 타 쓰는 역모기지론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고한 것은 정부였다. 그래 놓고 보유세를 올리면 역모기지론이 끝날 때까지 집을 팔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은퇴자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각종 세금의 강화는 자칫 전세금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보유세 강화로 세금 부담이 많아져 집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요자들로 인해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 전세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오른 세금 분 만큼을 세입자에게 전가할수록 전세금은 더 올라간다.
부자들을 겨냥해 부과한 세금 때문에 집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는 셈이다.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벌써 이 같은 ‘전세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 투기의 주범은 ‘부동산 부자’라기보다 저금리와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다. 저금리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부동자금이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만들며 부동산 시장 주변에서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떠 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동자금을 흡수할 방안이 없다는 게 8·31 대책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부동산에만 몰리는 시중 자금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지 못하는 한 대책의 약발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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