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서사와 소리에 의해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것이 기존 영화의 방식이라면 이명세 감독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내 놓은 ‘형사: 듀얼리스트’는 그 반대다. 주인공은 이미지다. 서사는 이미지를 통해서 구체화되고 소리는 그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도 이미지가 떠맡는다. 기승전결을 무시한 채 영화는 사건의 중심으로 단숨에 뛰어 들어가 어떤 친절한 설명도 해 주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허술한 서사의 빈 곳을 채우고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은 관객의 할 일이다. “이 영화는 시와 같다”는 이 감독의 말처럼 ‘형사’는 행간을 읽어야 하는 영화인 터라 그 속에서 어떤 것도 읽어내지 못했다면 시끄러운 나이트클럽에서 기계적으로 나오는 ‘뽀대 나는’ 뮤직 비디오와 다를 게 없다.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명성에 어울리게 화면의 질감과 색채는 지독하게 아름답지만,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을 내달릴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조선을 배경으로, 가짜 상평통보 유통의 뒤를 캐는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과 자객 슬픈눈(강동원)의 로맨스가 주된 축이다. 하지만 멜로 영화의 어떤 전형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자처럼 예쁜 남자와 남자처럼 껄렁한 여자라는 전복적인 이 커플 사이에는 노골적인 밀담도 없다. 말이나 사건이 아니라, 이 커플의 감정 곡선은 다만 눈빛과 몸짓을 통해서만 읽혀질 뿐이다.
영화의 백미는 달빛 아래 돌담 골목길에서 두 사람이 두 차례 검의 승부를 겨루는 장면으로, 주인공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언어다. 바라보다 부딪히고 잠시 떨어졌다 다시 격렬하게 휘감기는 이들은 온 몸으로 자신들의 기막히고 슬프고 격한 감정을 전달한다. 장면은 심지어 에로틱하기까지 해 ‘액션 에로티시즘’이라는 생소한 단어조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서사의 빈곤은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다. 화면은 늘 빡빡하게 차 있고 전환 속도는 너무도 빨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완벽하고 꽉 짜인 서사성보다는 일부러 구멍 뚫린 서사 구조를 제시해 관객들에게 열린 해석의 여지를 주고 또, 관객들은 그 허술한 자리를 메워가며 자발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최근 영화의 경향이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허술한 서사가 무조건 관객들의 자발적 향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형사’를 보며 관객들이 느낄 기시감(旣視感)도 즐거움을 반감시킬 수 있다. TV 드라마로 이미 익숙한 ‘다모’의 스토리인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익숙한 계단 장면에, 박중훈을 고스란히 데려온 듯한 하지원의 캐릭터, ‘영웅’ ‘연인’ 등 중국 무협영화에서 봐 온 화려한 색채감 등이 그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미적인 성과와 지금껏 보지 못한 대단한 이미지 실험은 분명 혀를 내두르고 숨을 막히게 할만큼 놀랍다. 하지만 그 전율이 모든 관객에게 통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8일 개봉. 12세 관람가.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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