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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그대 계속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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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그대 계속해서 가라

입력
2005.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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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 국정홍보실에서 이메일이 자주 온다. 보니, 조기숙 홍보수석이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두 건의 실험을 예로 글을 시작하고있다.

사람의 인식이 얼마나 환경, 즉 언론의 영향을 받는가를 보여 주는 실험들이다. 그는 ‘사람은 의견을 형성할 때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듣느냐에 따라 직접 영향을 받는다’고 쓰고 있다. 많은 언론의 비판 과잉을 서운해 하면서, 대안 있는 비판을 당부한 글이다.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 있다. 독일 여성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의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사람은 자기 의견이 다수 여론과 일치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반대로 자신이 소수에 속하면 침묵을 지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현상은 나선형처럼, 혹은 나사못처럼 확대된다. 고립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 속에 섞이길 갈망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뒤에서 지배적 여론을 형성ㆍ전파하는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 비난해야 하는 언론 풍토

현 정부는 비우호적 언론에 둘러싸여 왔다. 출범 이후 절대적 다수가 만든 포위망을 한번도 뚫어본 적이 없다. 사정은 딱하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기억이 있다.

지난해 8월 기자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장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참가한 기념식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신문협회장 자격으로 놀라운 축사를 했다. 그는 느닷없이 이기명 씨 얘기를 꺼냈다. 얼마나 가깝고 존경하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연했다. 이기명 씨는 노무현후원회장과 대통령후보 언론고문을 지냈고, 대통령에게 폭 넓게 조언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4개월 뒤 홍 씨가 주미대사로 내정되었다. 권력과 언론사 소유주의 야합은 그러나, ‘X파일’ 사건으로 반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홍 씨의 행적이 폭로됨에 따라 야합은 참담하게 실패하고 큰 낭패를 보았다.

쓰라린 실패를 딛고, 청와대가 언론과 관련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양이다. 언론과의 접촉을 급격히 늘여가고 있다. 별다른 반성은 없었지만, 이제라도 제2 라운드의 ‘창조적 긴장관계’를 재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측하건대 결과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가 없다. 많은 언론이 ‘침묵의 나선형’에 깊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신문에 글줄이나 쓰는 이들은 대통령을 비판ㆍ비난을 하지 않으면 글을 못 쓰는 풍토처럼 되어 있다.

선거 때 노무현 후보에 반대했더라도 그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다. 민주 시민의 자질은 고사하고 최소한 국익 때문이라도, 대통령과 정부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언론은 보도에서 정확하고, 논평에서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불공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의 길 가면 어딘가 닿게…

개리 오렌 등 미국 학자들에 따르면, 근래 각국 언론이 정부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양자가 모두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부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언론이 협력해야 한다. 언론이 정부의 훌륭한 업적, 이념적 정체성, 도덕적 청렴 등에 경의를 표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보도에서 조롱은 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침묵하고 싶은 유혹에도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보수 언론은 자신을 ‘비판적 언론’으로 미화하는 한편,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중도적 입장마저 ‘친정부적 언론’으로 매도하곤 한다. 언론인으로서 회의와 가치전도의 서글픔을 느낀다. 정부와 여당의 언론개혁은 시늉에 그쳤고,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는 잊혀져 가고 있다.

개혁을 위해 아직도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 계속해서 가라, 그러면 어딘가에 닿게 되리라.’ 사선(死線)과 같았던 호치민 루트를 통과하던 베트남 전선의 구호였다고 한다. 이 말을 베트남 전선의 슬로건이었다고 언짢아 하거나, 시비하지는 말기 바란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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