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 교통사고 환자에게 수혈되고, 약품 원료로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당국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은폐에만 급급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국가의 혈액관리에 구멍이 뻥 뚫린 실상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 국민들이 어떻게 마음 놓고 수혈을 받고 약을 사먹을 수 있을지 기가 막힌 노릇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 사건은 지난 4월 헌혈한 20대 남성이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여 역추적한 결과, 지난해 12월에도 헌혈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알려졌다. 이 혈액은 당시 에이즈 음성으로 판명돼 곧바로 교통사고 환자에게 수혈됐다. 환자는 사고 후유증으로 다음날 숨졌지만 생존했다 하더라도 에이즈 보균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청년의 혈장은 제약회사에 넘겨져 수천 병의 혈액제제로 만들어져 유통됐다. 보건당국은 의약품 제조시 적절한 처리를 통해 바이러스가 죽기 때문에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혈액제제로 인한 에이즈 감염가능성은 일부 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 안심 하라고만 하면 될 일인가.
보건당국 말대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왜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에이즈 혈액 수혈사실을 5월에 알았지만 복지부에는 7월에야 보고했고, 복지부는 여태껏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민들만 에이즈 혈액으로 만든 약을 멋모르고 사서 써온 셈이다.
주먹구구식 혈액관리로 인한 문제점이 표면화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혈액 판정을 잘못하거나 헌혈자 이름을 잘못 입력해서, 과거 병력을 조회하지 않아서 간염이나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 시중에 유통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보건당국은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한다며 부산을 떨었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국민들의 불신을 씻어주라는 주문을 되뇌어야 하는 심정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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