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아, 한류의 미래를 그려보아라.”
지난해 국내 방영 당시 시청률 50%를 웃돌며 ‘국민드라마’로 불렸던 MBC ‘대장금’(극본 김영현, 연출 이병훈)이 사극으로는 전례 없이 세계 무대 곳곳에 진출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한류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지난해 5월 대만을 시작으로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을 차례로 휩쓴 ‘대장금’ 열풍은 1일 드디어 중국 본토에 상륙했다. 일본에서도 NHK 위성채널에서 두 차례 방송된 데 이어 10월 중 지상파를 탄다.
‘대장금’은 이밖에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전역은 물론,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지상파 방송에까지 진출했다. 유럽 미국 호주 등지의 일본어, 중국어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것까지 포함하면 가히 ‘세계적 드라마’로 발돋움하고 있다.
1일부터 후난(湖南)위성TV를 통해 중국 전역에 방송되고 있는 ‘대장금’은 첫 회부터 인기를 끌면서 또 한번의 한류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국영 CCTV 등 막강한 경쟁사를 제치고 방영권을 따낸 후난위성TV는 전 중국을 열광시킨 리얼리티쇼 ‘차오지뉘성(超級女聲)’이 방송되던 밤 10시대에 ‘대장금’을 편성, 매일 2편씩 내달 10일까지 방송한다.
후난위성TV는 특히 시청률 견인을 위해 앞 시간대에 인기 오락 프로그램 등을 편성하는가 하면, 어린 장금 역의 조정은, ‘한상궁’ 양미경, ‘연생이’ 박은혜, ‘장금이’ 이영애, ‘민정호’ 지진희 등 출연진을 차례로 초청키로 하는 등 총력 마케팅을 펼치며 ‘대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겨울연가’ 열풍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일본 NHK도 10월로 예정된 ‘대장금’의 지상파 방송을 앞두고, 또다시 ‘한류 대박’ 예감에 들떠있다.
NHK는 앞서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7월부터 위성 BS2채널에서 ‘대장금’을 재방송하면서 드라마 내용을 알기 쉽게 소개한 ‘대장금 대사전’ 등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낸 데 이어, 지상파 방송에 맞춰 이영애의 개인 스토리를 담은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송키로 하고 최근 국내 촬영을 다녀갔다.
NHK는 주로 중년 여성들이 열광한 ‘겨울연가’와 달리, ‘대장금’의 시청자층은 폭이 넓다는데 큰 기대를 건다. 부모와 함께 ‘대장금’을 본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그려 게시판에 올린 주인공 그림들은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고,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에 반감을 가졌던 남성들의 호응도 높다.
시청자 오카다 쇼조씨는 게시판 글에서 “지진희는 진정한 사무라이를 떠오르게 하는 이상적인 남자다. 아내와 딸도 매우 좋아한다”고 밝혔다. 한 40대 주부는 “‘대장금’이 방송되는 날이면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일찍 오는 거 알죠’라고 귀뜸한다. 가족이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보다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한다”고 말했다.
올 봄 홍콩을 뜨겁게 달궜던 ‘대장금’ 열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홍콩 언론들은 홍콩판 ‘대장금’ 주제곡 ‘희망’을 불러 인기를 더욱 높인 톱스타 천후이린(陳慧琳)이 병상(病床)의 소년을 찾아가 ‘희망’을 불러주며 격려한 것을 일제히 화제로 다뤘다. 한국어 학습 붐이 일면서 국영방송 RTHK에 일본어 대신 한국어 방송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대장금’ 덕분에 한식당들이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일부 식당에서 내놓은 ‘대장금’ 특별세트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3일 전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홍콩의 서민들이 찾는 재래시장 몽콕의 ‘레이디스 거리’에 어린이용 한복이 등장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요즘도 점포당 하루 1~5벌씩 팔린다고 한다.
쇼핑몰이 밀집한 코즈웨이 베이에서 만난 장진취안(張金泉)씨 부부는 ‘대장금’에 대해 묻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참 아름다운 드라마다.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왕리엔징(王麗貞)씨는 “장금이, 민정호, 연생이도 좋지만 최상궁(견미리)가 특히 좋다”면서 “배우 인상이 홍콩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데다, 40대 주부가 어쩜 저렇게 젊고 예쁠 수 있을까 다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대장금’이 정치 마케팅에까지 활용된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지난달에는 여성 경제부장(장관) 허메이위에(何美 王+月)가 ‘허 대장금’이란 새 별명을 얻어 화제가 됐다.
장관직에 가사일까지 억척스럽게 해내 ‘오싱’으로 불리는 그가 태풍 피해로 인한 급수난을 약속한 기일 내에 해결하자, 행정원장이 “허 부장은 이제 ‘오싱’이 아니라 ‘허 대장금’으로 승격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여전히 식지 않은 ‘대장금’의 인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장금’ 수출을 담당한 MBC프로덕션에 따르면 ‘대장금’의 해외 판매액은 8월 말 현재 총 399만 달러로, MBC 드라마 가운데 가장 많고 편당 판매액도 1위다. MBC프로덕션 박재복 부장은 “별도 집계하는 MBC 해외지사를 통한 판매액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면서 “수출 지역도 폭 넓을 ?아니라, 가는 곳마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류의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홍콩=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이희정기자
■ 대장금 성공비결과 파급효과
‘대장금’ 열풍은 한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사극이 해외 시장 곳곳에 진출해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도 처음이거니와, 다양한 문화 마케팅을 통해 스타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한류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류를 이끈 드라마는 대개 청춘멜로 였다. 국경과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데 ‘얼굴 되는 스타+순애보’만큼 효과적 결합이 없는 것도 사실. 하지만 ‘겨울연가’ 열풍 이후 아예 한류 드라마들의 공식처럼 굳어지면서 “식상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고, 이는 한류를 겨냥해 작심하고 만든 ‘유사’ 드라마들의 기대 이하 성적으로 이어졌다.
‘대장금’의 대성공은 이미 이병훈 PD의 전작 ‘허준’ ‘상도’(MBC)를 비롯해 장보고 일대기를 다룬 ‘해신’(KBS) 등 사극이 한류의 전면에 나서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한류에 젖어 아직도 ‘복제’ 증후군에 시달리는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도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장금’이 외국에서도 남녀노소에 두루 사랑 받을 수 있는 까닭은 뭘까. 양은경 충남대 교수는 “문화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잘 결합한 ‘웰 메이드’ 드라마”라고 평했다.
한국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되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이질감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음식과 약제, 여성의 성공신화 등 누구나 관심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양 교수는 “여기에 재미와 교훈이 적절히 배합돼 흡입력이 강하다”면서 “이 정도면 문화권이 다른 서구에서도 먹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화 교류, 문화 마케팅 효과 면에서도 ‘대장금’은 여느 한류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다. 최근 베이징현대상보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대장금’은 TV 시청자들에게 한국문화의 정수를 강의하는 것과 같다. 한류가 표면적 열풍을 넘어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일본 NHK, 홍콩 TVB, 중국 후난위성TV 등은 드라마 방영 전후 한국 문화에 관한 다채로운 특집을 방송하고 있고, 그에 힘입어 민간의 자발적인 한국문화 배우기 붐도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고 있다.
한류 관광의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 ‘겨울연가’를 비롯한 기존 한류 드라마 팬들은 스타 미팅에 쏠리고 촬영장소를 방문하는 정도지만, ‘대장금’의 경우 한국문화 ‘체험’에 무게 더 실린다.
한국관광공사 한류연구팀의 한화준 과장은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이영애와 함께 하는 한국음식 만들기’ ‘지진희가 안내하는 고궁 나들이’ 등으로 스타 만남과 문화 체험을 결합한 다양한 상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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