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사건 처리를 놓고 여야가 각각 특별법과 특검법안을 국회 법사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 법안이 위헌이라고 맞서 타협이 어려울 듯 하다. 특히 어떤 절충을 하든 간에 위헌 논란을 피하기 힘든 것이 문제다.
두 법안 모두 헌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한 도청내용 공개와 범죄혐의 수사를 규정한 때문이다. 따라서 저마다 취약한 명분에 매달려 다툴게 아니라, 법 원칙에 충실한 대안을 찾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여당은 실정법 위반을 피하려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별법을 만든다고 위헌시비를 피할 수는 없다. 도청기록 공개를 민간위원회가 결정하도록 규정, 고도의 사법적 권능을 비헌법기관에 맡기자는 것도 큰 맹점이다.
통신비밀보호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헌법적 가치가 부딪치는 문제는 건전한 상식을 대변하는 민간위원회가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지만, 헌법 원리는 물론이고 건전한 상식과도 어긋난다. 특검 수사는 피하면서 기록 공개는 법 원칙에 얽매이지 않을 민간기구에 넘기려는 정략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야4당의 특검법안도 위헌소지가 다분하다. 검찰을 불신해 특검 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좋으나, 위헌적인 도청내용 수사 및 공개 권한을 특검에 부여하는 것이 국회의 입법재량에 속하는 지 의문이다. 특검이 안되면 검찰총장이 공개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민노당의 특별법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여야를 가림 없이 여론과 정략의 굴레에 얽매인 탓에 애초 넘을 수 없는 헌법 장벽 앞에서 공연히 목청을 돋우는 인상마저 준다. 먼저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해법 없는 대치를 무릅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지혜이고 용기일 수 있다. 그게 정치의 도리이고, 정치세력의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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