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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한박자 늦은 오케스트라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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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한박자 늦은 오케스트라 연주'

입력
2005.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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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궁금한 점이 있었다. 왜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지휘봉보다 항상 조금 늦게 연주할까? 클래식 DVD나 실황녹화를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와 같은 오케스트라 단원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연주하는 단원들도 잘 모른다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실제로 우리들은 지휘자의 지휘봉을 보고 정확히 따라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혹 외국 지휘자가 객원지휘를 할 때도 자기보다 늦게 소리 내라고 요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연주자들은 지휘자들의 각기 다른 지휘습관에 따라 귀신같이 맞춰 연주한다. .

외국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인종과 국가에 따른 문화적 차이일까? 외국에서 활동한 연주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정말 미스터리다. 그래서 여러 각도로 조사해본 결과 믿을만한 몇 가지 답을 얻었다.

내가 겪어본 훌륭한 지휘자 박태영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도 명확한 답을 할 순 없지만, 지형적으로 동북쪽으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다. 공산권국가가 많은 그 쪽 오케스트라는 기강이 매우 엄격해 실수로 먼저 한음이라도 나오는 날은 사표를 내야 한다. (원래 어느 나라 오케스트라든 군대에 비유될 정도니까 이해하자) 그런 상황에선 차라리 조금 늦게 나오더라도 티가 안나게 틀리는 것이 안전하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전체적으로 조금 늦게 연주한다는 것이다. 거장 므라빈스키 지휘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악장이 실수로 먼저 연주하자마자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생리적 가스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모두 웃고 넘어갔다는 믿지 못할 얘기. 실화란다.

또 다른 얘기는 베토벤 5번교향곡의 첫머리를 지휘자에 따라선 반박자 먼저 지휘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는 설. 이건 믿지 못하겠다. 지휘봉이 내려갈 때 박자를 맞추는 문화와 올라갈 때 박자를 맞추는 문화의 차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 또한 별 근거는 없다.

코리안심포니 단원출신인 콰르텟엑스의 비올라주자 김치국씨는 상당히 근거있는 답을 주었다. 관악기 연주에 맞추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관악기는 호흡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늦게 연주하는 것을 모두가 배려한다는 얘기다. 난 이걸 믿고 싶다.

사실 연주자가 아니라면 이런 일들은 중요하지 않다. 지휘자들의 깊은 음악성에 관심 갖는 편이 더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바그너의 반지시리즈를 위해 곧 내한하는 게르기예프와 같은 거장은 음악에 따라 길이가 조금씩 다른 지휘봉을 4개를 올려놓고 바꿔가며 지휘한다고 한다. 클래식공연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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