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초강대국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나. 27만3,600여명이 집을 떠나 미국 29개 주로 분산 수용되는 ‘블랙 엑소더스’가 시작된 가운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되풀이 묻는 질문이다. 인종갈등, 약탈과 강간 등 폭력,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등 증상이 한꺼번에 분출한 ‘미국병(病)’의 치료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니스트 조 클라인은 참상이 확대한 것은 미국의 분열, 그리고 ‘사회의 실종’ 때문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빈곤 퇴치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트리나가 들려주는 것’이라는 5일자 칼럼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정부와 사회는 필요악이리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특히 90년대 보수주의 이념이 확산하면서 빈곤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는 없고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가정이 있을 뿐”이라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말대로 뉴올리언스에 ‘사회’는 없었다”고 비꼬았다.
이라크 전쟁 비용을 위해 방재 예산을 감축한 것도 결국은 빈곤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된다. 이라크에서 매달 56억 달러를 전비로 사용하는 조지 W 부시 정부는 미 육군이 뉴올리언스 제방보수비로 2,700만 달러를 요청했는데도 390만 달러로 대폭 삭감했다. 불신이 무관심을 조장했다.
홍수예방사업에도 연방정부에 요청한 7,800만 달러는 그 절반도 못 미치는 3,000만 달러로 삭감됐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루이지애나주 정부 관할인 뉴올리언스 제방위원회는 제방관리를 할 돈으로 카지노를 사들이는 등 방만한 경영을 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도 ‘보다 큰 수치’라는 칼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곤의 수렁에 빠지는 미국인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일본 고베(神戶)지진 당시 약탈 등 범죄가 없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은 사회의 조직에 모든 사람들을 편입하려고 애썼다”면서 “미국, 특히 부시 정권에선 사회의 조직에서 부적격자를 쫓아내는 게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의 영아사망률이 천명 당 11.5명으로 증가했는데, 중국 베이징은 4.6명에 불과하다”면서 “국가예산이 어린이에 대한 백신보다 부자들을 위한 혜택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선 재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한 이후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총체적 신뢰의 추락이 일어난 것을 원인으로 꼽는 이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부룩스는 4일자 칼럼에서 “카트리나로 넘친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고 있다” 며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정보기관을 믿지 못하고, 분식회계로 선량한 투자자의 돈을 빼앗은 월드컴과 엔론 등 대기업에 분노한 데 이어 연방 및 주정부가 이재민을 내버려 이제 미국에선 모든 신뢰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다민족ㆍ다원화를 앞세운 ‘위대한 미국정신’의 기치도 빈부의 격차가 굳어져버린 ‘카트리나 등식’아래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허리케인이 몰려와도 대피할 수단조차 없는 극빈층들이 있는데도 감세는 최선의 정책이라고 외치며 잘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세금을 팍팍 깎아주는 나라, 이런 미국을 뉴욕타임스의 모린 다우드는 ‘치욕의 합중국’이라고 부르며 반성하고 촉구하고 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