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0년까지 총 54조원을 들여 인천, 부산ㆍ진해, 광양 등 3개의 경제자유구역을 건설,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발돋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체제 미비와 정책의 일관성 부재로 외자유치와 기반시설 공사는 더디기만 하다. 반면, 주요 경쟁 상대인 중국은 적극적인 대외 개방정책을 통해 2003년부터 세계 1위의 외자유치 국가로 떠올랐다.
국내 경제자유구역 출범(2003년8월) 2주년을 맞아 아시아 물류ㆍ비즈니스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하이(上海) 푸둥(浦東)경제특구와 쑤저우(蘇州)산업특구를 둘러봤다.
지난달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지 1시간30분 만에 푸둥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40여분쯤 지나 도심으로 진입하니 8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변에 수십 층 높이의 오피스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숲에는 HSBC 시티뱅크 등 세계적인 은행과 중국농업은행 인민은행 등 국내외 금융기관이 도열했고, 2010년 세계박람회(EXPO) 유치를 신청한 도시답게 여기저기 관련 광고판도 눈에 많이 띄었다.
1990년 이전만 해도 한가한 농촌마을이던 푸둥지역이 상하이는 물론 중국 내륙의 생산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탈바꿈했다. 푸둥은 중국 최대의 경제ㆍ무역도시인 상하이에서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변화의 핵심무대다.
이미 전세계에서 초고층 빌딩이 가장 많이 들어선 첨단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상하이 옛 시가지까지 포함할 경우 20층 이상 고층빌딩이 미국 뉴욕보다 700개 이상 많다고 한다.
푸둥지역을 화둥(華東)경제권(상하이 장쑤성 저장성 등을 아우르는 지역)을 선도하는 시범기지로 만든 뒤 그 힘을 창장(長江ㆍ양쯔강)을 따라 중국 내륙으로 뻗어나가게 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전략이다. 여기에 힘입어 푸둥특구의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 7,800억원에서 지난해 21조5,000억원으로 15년 새 30배나 늘어났다.
“3년 전 푸둥특구를 방문했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지가 개벽했다’고 말했지만, 지금 찾아오면 또 다시 놀랄 겁니다. 고층빌딩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푸둥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東方明珠)타워의 시야를 가릴 정도니까요.
그런데 인천 경제자유구역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중국은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삼보일배(三步一拜)의 속도로 가고 있습니다.”
96년 상하이에 진출한 한국타이어 중국법인 한영길 사장의 말이다. 한국타이어는 현지 공장을 세울 때 300만 달러 상당의 공장용지는 물론, 주민들의 이주비(50만 달러)까지 무상 지원 받았다. 한 사장은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 인ㆍ허가를 해결해준 덕분에 공장 설립절차를 6개월 안에 마쳤다”며 “한국에서라면 최소 3~5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둥특구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중국이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무서운 속도로 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동북아 허브경쟁의 핵심인 물류 경쟁력에서 중국은 이미 우리를 앞서고 있다.
범한물류 중국법인의 김상래 사장은 “세계 3위의 물동량을 처리하던 부산항이 2003년 상하이와 선전(深 土+川)에 밀려 5위로 추락했다”면서 “화둥지역의 항만이 고속 개발되고 있어 부산항을 이용하는 중국 화물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상하이 배후지역의 물동량을 흡수하기 위해 수심이 깊은 상하이 앞바다에 양샨선쉐이(洋山深水)항을 개발하고 있다. 2020년 양샨항 개발이 완료되면 상하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화물 처리능력(연간 2,200만TEU)을 갖추게 된다. 공항 경쟁력도 안심할 수 없다.
대한항공 상하이지점 김남희 과장은 “푸동공항의 여객 및 화물물동량이 인천공항보다 2배나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언제 역전될지 모른다”고 소개했다.
중국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인 푸둥특구 내 외고교(外高橋)보세구 관리책임자 장야오륜(張耀倫) 주임은 “중국의 산업발전 방향과 맞는 외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수입화물에 대한 면세와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세금 혜택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떨어진 쑤저우산업특구. 싱가포르의 발전전략을 그대로 적용한 새로운 개념의 경제특구다. 1994년 싱가포르 정부와 합작으로 개발을 시작한 이래 GDP 등 주요 경제지표가 연평균 45%씩 성장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2,000여개 외국기업이 221억 달러를 투자했고, 지금도 하루 평균 500만 달러의 외자가 들어오고 있다.
산업특구 투자유치국 김연옥(32ㆍ여ㆍ조선족) 주임은 “최근 대만 반도체업체 UMC의 12억 달러 투자유치 신청을 불과 3일만에 승인했다”며 “5성(五星)급 수준의 서비스를 3성급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유명기업과 금융기관이 밀려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상하이ㆍ쑤저우=고재학 기자 goindol@hk.co.kr
■ 경제계 원로모임 IBC포럼 상하이 세미나
2001년 9월 동북아 물류중심 개발전략을 정부에 처음 건의한 IBC포럼(이사장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은 8월30~9월3일 중국 푸둥특구에서 ‘경제자유구역의 운영실태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경제계 원로들의 모임인 IBC포럼은 이번 논의결과를 토대로 5일 광역자치단체에 속해 있는 3개 경제자유구역청을 중앙정부 직속기구로 개편하는 내용의 특별법 마련을 정부 당국에 긴급 건의했다.
고병우(전 건교부 장관) 운영위원장은 “우리의 경제자유구역을 중국처럼 국가 선진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도록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데 이번 세미나 참가자들의 의견이 일치됐다”고 말했다.
세미나에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ㆍ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박병윤 전 국회의원(전 한국일보 사장),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최수병 전 한전 사장 등이 참석했다.
◆ 문제점
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2년 동안 외자유치 실적(계약기준)은 200억 달러에 달하지만, 실제 유치된 자본은 3억 달러 미만이다. 규모가 가장 큰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현재 계약이 체결된 것은 제2연륙교 건설 등 6건 132억 달러다.
21세기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인데도, 사업계획 수립이나 인ㆍ허가 권한 등이 중앙정부의 각 기관과 지방정부에 분산돼 있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
3개 경제자유구역청이 광역자치단체 산하에 있다 보니 시의회의 간섭을 받아야 하고 예산이나 인사상 제약도 심하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 팽창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에 묶여 국내 대기업 유치가 원천 봉쇄돼 있고 외국인 학교와 병원 설립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 개선방안
경제자유구역을 동북아 허브로 키우려면 지역균형발전 전략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제특구’로서의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경제자유구역청을 광역자치단체에서 분리, 중앙정부 직속으로 개편하고 무비자 무관세 무노사분규 등 ‘3무(無)원칙’을 적용해 특별관리할 필요가 있다.
경제자유구역청의 예산은 국고보조금 지방교부금 등으로 충당하고, 경제자유구역내 국내 기업 유치문제는 명망있는 민간인과 전문 관료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심의를 통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방 외교 사법을 제외하고 외자유치 및 주민행정 등 모든 권한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제자유구역청장에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 비싼 땅값을 낮추기 위해 토지 지목별 용도를 정하고 장기임대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상하이= 고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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