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 주민이 관리업체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항의표시로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 관리사무소는 해당 가구의 전기를 끊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3건의 관리비청구소송도 냈다. 주민은 이들을 불법단전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및 위자료청구소송을 냈다. 관리비를 둘러싼 송사는 6년째 계속되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 S아파트에 사는 안모(51)씨가 관리업체의 부조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안씨는 “관리업체가 보수공사를 하면서 부실업체와 계약하고, 관리비 중 일반관리비(공과금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용)의 사용내역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등 불투명한 운영을 하고 있다”며 3월부터 관리비 납부를 거부했다. “불성실한 관리를 하고 있는 업체에 관리비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안씨의 주장이었다. 관리사무소는 수차례 독촉에도 불구하고 안씨가 ‘일반관리비 분리고지’를 주장하자 99년 10월 안씨 집에 대한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안씨는 굽히지 않았다. 냉장고를 돌리기 위해 발전기를 샀고 밤에는 촛불을 켰다. 안씨의 부인은 손빨래를 거듭하다 손목에 염증이 왔다. 막내아들은 칠흑 같은 밤을 견디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안씨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소장 등을 불법단전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단전의 효과가 없자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2000년 1월 안씨를 상대로 관리비청구소송을 냈다. 불법단전 혐의에 대한 검찰 기소와 함께 2000년 7월 전기 공급은 재개됐지만 같은 해 9월 안씨는 이번엔 단전에 따른 손해배상 및 위자료청구소송을 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2001년 12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사무소장은 무단으로 전기를 끊은 혐의(전기사업법 위반)가 인정돼 각각 200만원과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법원은 “전기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와 거부할 권한을 가진 자를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관리비 미납을 이유로 전기를 끊을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관리비청구소송은 2002년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안씨는 판결 직후 밀린 관리비를 내고는 다시 새로 부과된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이후 2차 관리비청구소송에서도 이겼고 지금은 3차 관리비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다.
남은 것은 단전에 따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 5년을 끈 이 소송에서 안씨 가족은 손해배상 부분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700만원의 위자료 지급 결정을 얻어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서울북부지법은 5일 “단전 행위를 안씨가 주장하는 손목부상 치료비, 아이들 독서실비, 양초 구입비 등 재산 피해의 직접 원인으로 볼 수는 없으나 불법 단전으로 인해 안씨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인정된다”며 “입주자대표회의 및 회장, 관리업체 및 관리소장은 안씨 부부에게 각각 200만원, 아들 3명에게 각각 100만원씩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생업을 중단하다시피 하고 관리비 소송에 매달린 안씨는 올 봄부터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법률공부도 하고 있다. 안씨는 “주민들이 개인적인 피해에는 민감하면서도 다 함께 입는 피해에는 무감각하다”며 “주인의식을 갖고 감시와 행동에 나설 때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관리사무소 측은 “불법 단전은 잘못됐다고 인정하지만 안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부실관리를 하지 않았다. 관리비 사용 내역도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주민들에게 성실히 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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