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리 목선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선박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정도로 오래된 배다.
고고학계는 비봉리 목선 발굴이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고선박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것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조유전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제작및사용 시점이 8,000년 전으로 최종 확인되고 이를 통해 신석기인의 생활 방식과 선박 제조 기술 등에 대한 추가 자료가 확보되면 우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봉리 유적은 2003년 태풍 매미 때 완전 침수된지역으로 창녕군이 배수장을 건설하는 도중 발견됐으며, 신석기 시대 분석(糞石·배설물 덩이)과 동물 그림 등 많은 유물이 지난 6월께 상층부에서 발굴됐었다.
배의 상태 및 제작 방법
배가 발견된 곳은 비봉리 유적의 가장밑부분인 신석기 초창기 층위로해 수면보다 2┢ 정도 낮다. 과학적인 연대 측정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고고학적 층위로 볼 때 신석기 초창기유물이 거의 틀림없다고 김해박물관측은 밝혔다.
배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져 있으며 강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약간기울어져 있다. 선미부 일부가 훼손된점을 감안하면 실제 길이는 4m가 넘을것으로 추정된다. 배는 소나무를통째파내 만든 목선으로 불에 태워 가공한흔적즉초흔(焦痕)이있다. 가공하려는 부분을 불로 태운 다음 돌도끼같은 것으로 깎고 다시 돌로 갈아서 다듬은뒤U자형으로파배를 만든 것이다.
용도
창녕 지역은 낙동강 하구로 강을 따라 김해를 거쳐 남해로 이어지는 곳이다. 임학종 김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를 감안할 때 배가 어로와 운송등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유전 교수도“신석기 유적에서 그물추가여럿 발견된 것으로 보아 당시 고기잡이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며“이배는 어로 활동은 물론, 주민이나 짐을 나르는데도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낙동강과 연안에서는 사용했어도 원양 어로용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배는 4~5명정도 탔을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울주 반구대암각화를 보면통나무배에 10명이상이 타고 있는 장면이 있다”며“이번에 발견된 배의 실제 길이가 우리의 추정보다 더 길다면 10명 정도까지 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이철환학예연구사는“신석기주거지역이강, 바닷가에 많이 분포한 점으로 미뤄볼 때 신석기인들은 어로 작업을 많이 했으리라 추정되며 어떻게든 배를 만들려했을 것”이라고 전제, “당시 사람들의 기술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 돌칼, 돌도끼 등을 이용해 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고선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로는경주 안압지배(8세기),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11세기), 안좌도선(13~14세기), 달리도선(14세기) 등이 있는데 모두 통일 신라 또는 고려 시대의 것이다.
이에 반해 비봉리 목선은 선사 시대의 것으로 안압지 배보다 6,800년이나 앞선다. 이는 1954년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옆에서 발굴된 고선박(4,600여년 전 제작 추정)이나 60년터키 겔리도니만 해저에서 발굴된 난파선(3,300여년전제작 추정)보다훨씬 앞서며 도리하마(鳥浜) 1호, 이키리키(伊木力) 유적 출토품 등 일본의 고선박보다도 2,000년 이상 앞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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