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유가 상황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고유가는 1,2차 오일쇼크와 다르다”고 말한다. 중국 중심의 수요 증가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원인인 만큼 단기간에 공급량을 늘릴 수 없는 한 고유가 상황은 구조적이고 장기화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각은 어떨까. “1990년 대에도 이미 고유가는 예고됐다. 냉전시대 저유가는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하루 200만 배럴의 잉여생산 능력을 유지했다. 그러니 냉전체제가 깨지면서 저유가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유가 움직임 뒤에 도사린 정치적 배경, 또 세계 정치의 동인(動因)으로서의 석유의 의미를 파헤치는 전문가가 있다. 한국석유공사 이준범(42) 연구조사팀장은 미국 미주리대에서 에너지를 전공한 석유정치경제학박사다.
세상의 모든 일을 석유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는 “수급 요인을 따지는 경제적 분석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석유 경기의 뒤에는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의 가격 상승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낡은 정유시설과 사우디의 전술 탓”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최대 석유 소비국이고, 중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석유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문제는 두 나라 모두 오래된 정유시설밖에 없어 중질유 이상의 원유만 소화하다 보니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런데 사우디가 이 틈을 이용, WTI 생산량을 줄이면서 15달러 이상 차이가 나던 두바이유와의 가격차가 6달러 정도로 좁혀졌다.
앞으로 유가 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외적 요인은 사우디의 후계구도를 꼽았다. 이 팀장은 “고령인 압둘라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차기 왕이 얼마나 반미적이냐가 큰 변수”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사우디 의존에서 벗어나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이라크전을 일으켰지만 뜻과 달리 이라크 재건이 늦어지면서 사우디와의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경제 경영 법 정치 어학 등을 전공한 10여명의 연구조사팀을 이끌며 이처럼 복잡한 석유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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