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닐 때, 부모님이 시험 백 점 맞으면 게임기 사준다는 약속을 어겨서 무척 실망했다.”(고1 남학생)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백설공주 베개를 사준다고 약속하고서 사주지 않은 일로 오랫동안 상심했다.”(중1 여학생)
5~7세 때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에게 실망했다는 아이들이 많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말하는 약속이란 대개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이다. 이 시기에는 친구들이 갖고 있는 물건을 자신은 소유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러움과 실망감이 매우 크다.
이는 또래보다 우월한지 혹은 열등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 정보의 사용을 5~6세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장난감이나 게임기, 예쁜 옷 또는 애완동물을 갖게 해주겠다고 약속 받았을 때의 기쁨도 크고, 부모가 그 약속을 저버렸을 때 느끼는 실망감도 어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자녀가 약속을 잘 지키고 신뢰 받는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작은 약속일지라도 신중하게 하고, 자녀와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본보기이고, 자녀들은 부모가 가르치고 싶은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싶지 않은 것도 모방하기 때문이다.
또한 5~7세 무렵은 ‘형제를 편애하는 부모’에 대해서 실망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여섯 살 때 친구 집에서 놀다가 6시쯤 들어왔는데 엄마가 나를 내쫓은 일. 동생은 네 살이었는데 친구 집에서 놀다가 10시쯤 돌아왔는데도 혼내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차별할 수가……”(중1 여학생)
“매 맞고 실망한 것보다 아빠가 동생과 차별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가장 실망했다. 내가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생 선물만 사왔다. 사실 오래된 일이지만 그 땐 정말 혼자 펑펑 울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2 남학생)
‘형제를 편애하는 부모’에 대한 실망이 5~7세 시기에 집중되는 것은 부모의 관심이 다른 형제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형이 있다면 부모의 관심이 쏠리는 초등학교 1~2학년일 것이고, 동생이 있다면 한창 귀엽게 재롱을 부리는 나이일 테니 말이다. 동생은 부모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존재여서 형들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시기에 형의 위치에 있는 자녀에게는 부모의 각별한 애정 표현이 필요하다. 반면 동생들은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학교에 다녀 아는 것도 많은 형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부모마저 형의 편을 들고 나서면 동생은 자기가 못나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비하하기 쉽다.
부모들은 버릇처럼 “형처럼만 해봐라” 또는 “동생처럼 해봐라”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남도 아닌 형제끼리 서로 좀 보고 배우라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된 말인가 하겠지만 누구보다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녀들에게는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
한편 여아들은 오빠나 남동생에 대한 부모의 편애 때문에 편애에 대한 실망 사례가 남아들보다 3배 정도 많았다. 남아선호의 그릇된 사상이 편애의 감정을 조장한 것이라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이해타산에 따라 자식에게 주는 사랑의 크기가 달라진다면 부모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모든 자녀는 성별에 대한 편견 없이 그 자체로서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신규진·서울 경성고 상담전문 교사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저자 sir90@chon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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