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빨리 배운다. 어리면 어릴수록 빠르다. 외국어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곳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어른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고향 말을 쓰는데 아이들은 금방 이사간 곳의 사투리를 배운다.
서울에 있는 아이를 보름만 강릉 할아버지 댁에 보냈다가 데리고 오면 이 녀석이 집에 와서까지 강릉 말을 쓴다. “너 거기서 날마다 떼쓰고 그랬지?” 그러면 “아니래요. 그랬다간 바로 야단 듣는대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제 엄마가 깜짝 놀라, “여보, 여보, 얘가 강릉 말을 써요.” 그러면 “뭐이요? 엄마는 내가 무신 강릉 말이라고 쓴다고 그래요?”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렇게 말에도 서로 이기는 말이 있고 지는 말이 있다. 서울 말은 전라도 말에도 지고 경상도 말에도 지고 강릉 말에도 진다. 서울 아이를 강릉에 데려다 놓은 금방 그 쪽 말을 따라 하지만 강릉 조카들이 한 달 서울에 와 있으면 이 아이들이 서울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때에도 우리 아이들이 강릉 말을 따라 한다. 같이 어울려 놀다 보면 옆집 아이까지 금방 “이랬다는데요, 저랬다는데요.” 하며 저희들만의 즐거운 사투리 연수를 하는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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