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렌퀴스트 미 대법원장이 3일 밤 버지니아주 알링턴 자택에서 갑상선암으로 타계했다고 미 대법원이 밝혔다. 향년 80세. 캐시 오버그 대법원 대변인은 3일 밤 “지난해 10월부터 갑상선 암으로 투병해온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지난 며칠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전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고 말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7월 1일 은퇴를 선언한 지 2개월 만에 지난 33년 동안 대법원에서 보수적 성향을 판결을 이끌어온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면서 미 대법원은 1971년 이래 처음으로 동시에 대법관 2명이 공석이 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따라 향후 대법원장과 대법관 지명을 둘러싸고 미국 사회에서 보혁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미 중도 성향의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법률 서기를 지낸 존 로버츠 판사를 지명해 놓고 있다. 백악관과 법원 소식통들은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기 이전에도 부시 대통령이 그가 은퇴할 경우 후임으로 보수적 인물을 지명, 법원의 보수화를 더욱 공고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해왔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4일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로버츠 대법관 지명자를 대법원장 후보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후임 인준과 동시에 이미 은퇴를 공식 선언한 오코너 대법관이 일정 기간 재판을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렌퀴스트, 23년간 '법원 보수혁명' 이끌어
3일 타계한 윌리엄 렌퀴스트 미국 대법원장은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 이념을 지탱해 온 사법부의 수장이자 보수 우파의 거목이다.
대법원장 18년을 포함, 임종할 때까지 23년간 봉직한 대법원에서 그는 미국사회의 물줄기를 바꾼 수많은 판결을 주도해 법원의 보수혁명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런 경력은 종종 9ㆍ11 테러의 상징성에 비유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렌퀴스트 이전과 렌퀴스트 이후’로 미국 사법부를 구분할 정도다.
위스콘신주 밀워키 출신인 그는 지난해 6월 “하느님의 보호 아래란 문구가 있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충성맹세를 거부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를 부당하게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판결해 당시 미국 전역을 달군 정교분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공립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암송에 종교를 연상시키는 ‘하느님 아래(under God)’란 구절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에 제동을 건 것이다.
1999년 1월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탄핵재판을 주재했다. 부인 힐러리(현 뉴욕주 상원의원)는 당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우파들의 공격”이라고 정치적 음모설을 강력히 제기하기도 했다.
2000년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 간 플로리다 재검표 혈투에서는 5대4의 판결로 부시의 승리를 최종 선언해 ‘법선 대통령’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1972년 법무부 변호사로 일하다 82년 1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발탁된 그는 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된 이후 낙태, 동성애, 총기 소유, 소수인종 우대조치, 사형제도 등 이념 갈등이 첨예한 미국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수이념의 토대를 닦는 판결을 제시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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