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에 대한 조지 W 부시 정부의 책임론이 부상하면서 정치적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수습을 위한 단결을 먼저 외치던 미국의 미덕을 카트리나 재앙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제방 보호 예산삭감에서부터 늑장 지원, 연방 재해기관의 무능, 대통령과 관료의 부적절한 행보 등 자연 재해에 대응하는 부시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위기를 절감한 부시 대통령은 연일 고강도의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미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흑인과 빈곤층 밀집 지역 피해에 대한 연방 정부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미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흑백 인종 갈등까지 불거지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공화당 집권 100년 대계의 장기 포석은 고사하고 당장 국내 정책 과제 추진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 상실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장관은 3일 기지회견에서 “이번 일은 최악의 참사였지만 정부는 피해 지역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허리케인 피해 발생 5일이 지날 때까지 구조는커녕 물과 음식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고립됐던 이재민들의 절규 속에 묻히고 말았다.
자동차 등 피신 수단을 가진 못한 빈곤층을 위해 슈퍼돔을 최후의 피난처로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3일자 사설을 통해 주방위군이든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누군가는 수많은 군중들이 일주일동안 그곳에 대피할 경우 식수와 음식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견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또 주방위군도 초대형 허리케인 상륙 전에 피해예상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최소한 강타 직후 출발할 수 있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이라크 전비 때문에 제방예산지원이 삭감되고 이라크 주둔 병력 운영 문제로 주방위군의 투입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됨으로써 부시 정부는 향후 이라크 정책에 더욱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게 됐다.
부시 대통령과 각료들의 행보도 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해 재선 운동 당시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이 강타한 플로리다주에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이재민들에게 물을 나눠 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이 남부지역을 할퀴고 간 지 4일이 지난 2일 현장 시찰에 나서면서 이재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슈퍼돔이나 컨벤션 센터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마지 못해 나선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딕 체니 부통령과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카트리나의 멕시코만 강타 예보가 시시각각 전해지는 상황에서도 휴가를 계속 즐기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 미 지도부의 안일 대처 비난을 자초했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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