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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개헌 스퀴즈 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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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개헌 스퀴즈 번트

입력
2005.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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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 가운데 야구의 작전 신호만큼 복잡한 것은 없다. 이를테면 3루 주자가 있는 득점 찬스에서 작전코치가 내는 현란한 사인은 그 자체가 구경거리다. 두 손으로 머리 가슴 배 허벅지를 분주하게 더듬는가 하면, 코와 귀 등을 차례로 만지고 손뼉까지 친다.

물색 모르는 관중은 어지러운 사인을 선수들이 어떻게 알아보는지 신기할 정도다. 물론 수십 가지 동작마다 뜻이 있고, 선수가 그걸 일일이 분간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느 게 진짜 사인이란 것과, 강공이냐 번트냐를 구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지럽게 내놓은 정치적 신호도 결국 알맹이는 야구 사인처럼 단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구도 해소 명분을 앞세워 파격적 발언을 거듭했지만, 세상은 내각제 개헌 신호로 쉽게 풀이한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보는 가운데 만질 곳 다 만지고 손뼉까지 친 대통령은 정작 개헌 하자는 거냐는 물음에는 어물쩍 말을 흐린다. 마치 작전 사인이 헷갈린 선수가 달려와 강공이냐 번트냐고 묻는 데도 “지금은 밝힐 때가 아니다”며 딴전 피우는 야구 코치처럼 코믹하다.

■야구 사인이 복잡한 것은 적이 간파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자기 편 선수도 헷갈리는 사인을 낸 이유는 뭘까. 국민이 어리석기 때문이란 방자한 주장과 대통령의 심리가 왜곡됐다는 정신분석이 엇갈리지만, 무엇보다 공명정대해야 할 개헌 제안을 오로지 승리를 노린 점수 짜내기 번트 대듯이 하는 옹색함을 숨기려는 의도일 것이다.

곧장 개헌을 들고 나오면 국민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것을 알기에, 대연정과 선거제도 개편과 임기조정 등으로 변죽만 계속 울린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은 명분이 사실과 논리에 부합하는가를 따져 판단할 일이다. 대통령이 스무고개 하듯 던지는 말을 엮어보면 독일식 내각제와 선거제도 등에 온통 매료된 듯 하다.

그러나 지역구도에서부터 우리 현실은 판이하다. 독일은 지역에 관계없이 보수와 진보 정당 지지율이 각기 40% 안팎으로 일정하고, 이에 따라 제 3당과 연정이 무리 없이 이뤄진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지역 한나라당 지지율이 2~3%에 그친 우리 현실에 독일식 내각제 등을 도입할 경우,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강화될 수도 있다. 핵심 명분부터 근거가 모호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개헌 논의를 안개 속을 헤매듯이 시작해서는 안 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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