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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재웅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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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이재웅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입력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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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던 시인의 말은, 야속하고 터무니없다. 가난은,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그 어떤 사회적 차별의 올가미들보다 악랄하고 끈질기게 삶을 옥죈다.

“한낱 남루”라는 투의 이데올로기는 허기의 신음조차 틀어막고 안분자족(安分自足)하지 못함을 조롱한다. 적어도, 이재웅씨의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의 화자인 13살 소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나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150쪽) 소설은 꿈을 차단당한 ‘나’와 ‘자격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부모 없는 산골 출신 소년이다. 할머니마저 숨진 뒤 ‘나’는 24살 이복누이를 따라 서울로 이사한다. 14살에 가출한 누이는 유흥가를 떠돌다 빚에 묶여 창녀가 된다. 그녀는 50대 포주 남자의 관리를 받으며 노예처럼 산다.

‘나’는 무서우리 만치 영악하다. “난 이미 늙은 소년이었다. 나는 믿어야 할 말과 믿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았”고 “그 스승을 지명해야 한다면 ‘가난’이었다.”(17쪽) 그런 ‘나’에게 “거짓은 밝고 행복하고 진실은 어둡고 불행했다.… 나는 항상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 더 쉬웠다. 거기에는 고통이 없었다.”(36쪽)

순정에 미쳐 버는 족족 남자들에게 날리고 창녀로 전락한 누이에게 ‘나’는 영혼의 안식처이고, 나 역시 세상에서 믿는 것이라고는 철 없이 순수한 누나가 유일하다.

누나의 고통에 나의 내면은 더욱 황폐해간다. 포주를 죽이라는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눈물을 흘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난 열 살 이후부터 울어본 적이 없었다.”(116쪽) 그는 마음속으로 운다.

‘나’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다. 고아원에서 뛰쳐나와 노숙하는 14살의 친구는 빈병 스무 개를 주워 즉석복권을 사고, 한 반의 가난한 여자애는 ‘나’의 누나처럼 “돈 잘 버는” 창녀가 되는 게 꿈이다. 공짜 점심 주는 선교회에서 만난 한 친구는 천사보다 사탄이 더 좋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맨날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러운 옷도 입지 않고, 저 하늘 위에서 웃을 일밖에 없는데 왜 제가 천사를 좋아해야 하죠?”(251쪽)

‘아Q정전’의 루쉰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꿈에서 깨어나 찾아갈 길이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 길이 없을 때 필요한 것은 차라리 꿈이라고 했지만, 13살의 ‘나’는 이미 세상이 쏘삭대는 ‘꿈’마저 조롱해버린 지 오래다.

울지 않는다는 말은 눈물이 곧 투항임을 안다는 의미다. 죽어도 안 운다는 말은 죽어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속으로 흘리는 눈물은 분노와 복수심의 결정들이다.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세상에 던지는 수많은 ‘나’의 질문이다. 아마 세상은 끝내 답하지 못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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