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두 연극축제가 못 보던 풍경을 빚어낸다. 블랙박스 시어터에서의 ‘2005 핀터 페스티벌’과,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 극장에서의 ‘키네틱 페스티벌’. 특정작가를 심층 탐구하는 연극제라는 점, 미학적 탐구작업을 대중과 함께 하는 마당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발길을 붙든다.
3회로 접어 든 핀터 축제는 인간과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렬한 야유로 그득하다.
극단 가변의 ‘2005 콜렉션’은 자신의 아내와 친구의 불륜을 믿는 남자에 의해 벌어지는 진실게임을 추적한다. 혼외 정사의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남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전략과 그에 따른 상처들뿐이라는 결론은 정치, 사회적으로 바람 잘 날 없는 한국적 상황과 어슷하게 닮아있다. 송형종 연출, 이기봉 이상훈 등 출연. 7~11일.
극단 와우가 국내 초연하는 ‘귀향’은 핀터의 작품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이름난 부조리극. 철학교수가 아버지와 3형제가 사는 집으로 애인을 데리고 오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며느리를 창녀처럼 보는 아버지, 형수를 겁탈하는 동생 등 비상식적 상황이 난무한다. 배우 심철종씨는 “현대인의 공허가 극단적으로 표현된 극”이라고 말했다. 불쾌감, 당혹감, 통념의 파괴 등에서 어느 것을 택할 지는 객석의 몫이다. 장경욱 연출, 이호성 박정근 등 출연. 13~18일.
이밖에 극단 혼의 ‘핫 하우스’는 요양소에서 소장과 환자들 간에 벌어지는 파워게임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송현옥 연출, 20~25일), 극단 원의 ‘배신’ 은 모호한 대사, 불합리한 추론, 무의미한 반복 등 이른바 핀터식(Pinteresque) 어법의 극치를 보여 준다(정경숙 연출, 27~10월2일). 공연시간은 모두 오후 4시.7시30분. (02)762-0010
언외별전(言外別專)이라 했다. 마임이스트 임도완씨가 지휘하는 ‘키네틱 페스티벌’은 미마쥬(마임+이미지)의 통로를 거쳐 삶의 진실에 도달한다.
13~25일의 ‘휴먼 코미디’는 사진사 식구(‘가족’), 냉면 먹기를 둘러싼 과장된 에피소드(‘냉면’), 여관 주인, 강도, 국회의원 등 인간 군상의 행태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단면(‘추적’) 등 3편을 통해 폭소 마당을 이끌어 낸다. 게오르크 뷔히너 작 ‘보이첵’은 의자와 마임이스트들의 절묘한 앙상블을 통해 권위, 억압, 피해 등 사회를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형상화한다(27~10월 3일).
‘벚나무 동산’은 이번 행사의 꽃. 체홉의 고전을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배경을 해방기의 안동으로 해 원작의 희극적 색채를 비극으로 물들인다.
위선적 웃음으로 간신히 지탱되는 인간의 현재, 그럴수록 인간은 향수에 매달리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현실을 그렸다. 임도완 연출, 권재원 백원길 조재윤 등 출연. 10월5~9일. (02)744-030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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