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도쿄 변두리의 ‘일본 민예관(民藝館)’을 찾은 적이 있다. 아담한 일본식 박물관이 한적한 곳에 서 있었다. 조선 미술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세운 우리 미술품의 보고 앞에서, 작은 설렘이 일었다. 그게 아니었다. 우리 미술품은 적었다. 일본 것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골동품이 들러리 서듯이 전시돼 있었다.
도자기와 민화 등의 수준도 그리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야나기가 생존해 있었다면, 더 많이 훌륭한 우리 고미술품을 볼 수 있었을까. 부질 없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 야나기는 하찮게 여겨지던 민예나 공예를 예술차원으로 끌어올린 이론적 대가이자, 최초로 조선의 미를 본격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미학자다. 그는 조선백자와 기와의 선, 흰 색 등에서 비애와 적요를 느꼈고, 미의식의 특징을 ‘비애의 미’로 규정 지었다.
많은 후세 한국학자들이 이에 공감했고, 또한 많은 이들은 그 비극적 시각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야나기가 가련한 선의 맛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자연과 자유분방, 단순, 여유 등의 특징도 찾아내고 있다. 이 긍정적 관점은 고유섭 최순우 등에 의해 좀더 다듬어진다.
△ 야나기는 일찍이 ‘한류’ 바람을 예상한 것일까. 그는 ‘조선의 미술’에서 ‘조선이 예술에 의해 동양문화 속에서 탁월한 위치를 인정 받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일본민예관 등 일본의 5개 박물관에서 소장한 조선민화 100여 점이 ‘반갑다! 우리 민화전’(6일~10월 30일, 서울역사박물관)을 통해 소개된다.
호랑이와 까치가 노는 그림, 도자기와 책 그림, 물고기나 사슴 등의 문자도 등이 출품된다.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고,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의 민화들이다.
△ 이 그림들은 일본인의 합법적 수집품이라 할지라도, 일본이 약탈해간 한국 문화재는 얼마나 될까. 최근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문건이 공개되었다. 이 때 한국은 4,479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으나, 32% 정도인 1,431점만 돌려 받았다.
몇해 전 타임지는 일본이 10만여 점을 약탈해 갔으나, 한국정부는 반환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야나기의 민화들을 즐겁게 보기에 앞서 착잡한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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