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연 재해 앞에 무너졌다. 이재민의 절망과 분노, 약탈과 강간, 무차별 총격, 길가에 널브러진 시신들, 넋을 잃은 구조 요원들. 멕시코만 연안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거대 강국 미국의 내부에 감춰진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시가전 상황”=권총 등으로 무장한 성난 군중들이 시가를 활개하면서 아직 수중의 뉴올리언스는 무법천지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일부 약탈범들은 응급 환자가 대피한 채러티 병원에 마구 총격을 가해 소개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연방비상관리청(FEMA)의 마이클 브라운 국장은 “시가전 상황에서 구호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며 치안 부재 상황을 증언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선 구조 작업에 나서거나 구호품을 떨어뜨리는 헬기에까지 총격이 가해졌다.
구조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엔 경찰 저격병들이 건물 옥상에 배치돼 경계를 폈으나 폭력 상황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주방위군과 경찰의 주임무가 폭력, 약탈범 소탕에 치중되면서 이재민 수송과 구난 활동은 더욱 지연되고 있다.
슈퍼돔에 있던 한 이재민은 “제발 주방위군을 보내지 말라. 이 곳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확성기를 가진 사람을 먼저 보내라”고 경고하면서 “10대들이 여자 아이들을 강간하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1일 약탈자들을 향해 “절대 관용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처토프 미국토안보부 장관은 1일 치안 확보 및 구호 활동을 위해 앞으로 7일 동안 매일 1,400명씩 주방위군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사적 SOS=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이날 CNN에 출연 “수 천 명이 식수와 식량도 없이 생명을 위협 받고 있다”며 “절박한 구조신호(SOS)를 보낸다”고 호소했다.
피난처에 수용된 일부 이재민들은 식량과 식수가 지급되지 않는 데 대해 거칠게 항의했으며 탈진한 일부 이재민들의 모습도 TV에 비쳤다. 한 시민은 물이 빠진 바닥에 “물을 달라”를 글씨를 써 놓았다. 컨벤션 센터에서는 헬기 1대가 구호품 전달을 위해 착륙을 시도했으나 군중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혼란이 빚어져 다시 부상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슈퍼돔에 수용된 이재민의 휴스턴 애스트로돔 이송 활동은 이날 오전 한 때 군 긴급 구호 헬기를 향해 총격이 가해지면서 잠시 중단됐으나 중무장 군경의 호위 아래 재개됐다.
연방정부 성토=시 비상청의 한 간부는 “연방비상관리청 직원들이 3일간 이곳에 있었지만 지휘고 통제고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이것은 국가적 수치”라고 연방정부의 지원 부재를 성토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26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아직 시가지에 흰 천에 덮인 채 방치돼 있는 시신들이 눈에 띌 정도여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관측했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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