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의 삶은 일제 파시즘(또는 군국주의) 치하에서의 삶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대통령이 스스럼없이 ‘권력이양’을 이야기하는 한국사회에서 ‘파시즘’이란 단어는 유통기한이 지난 사어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역사적 파시즘’의 저자인 문학평론가 권명아씨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파시즘을 ‘경쟁에서 살아 남고, 남을 딛고 위로 올라서려는 욕망의 문제’라고 정의하는 그는 IMF 이후 모든 집단에서 ‘증오’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는다.
‘모두가 막다른 길에 처해있다는 고립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막막함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 집단주의로 채색된 파시즘 사회의 내면이다.’
저자는 일제 말기 식민지 체제가 남긴 유산들을 점검해 봄으로써 우리 안에 숨은 파시즘을 까발린다. 일제 말기 여성들은 후방 관리와 가정 수호를 담당하는 ‘총후(銃後)부인’ 상을, 남성들은 황국(皇國)의 정예 부대이자 근대적 지식인에 대항하는 제3의 정체성을 지닌 ‘청년’의 역할을 강요 받았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 국가들 중 ‘조선’이 다른 미개한 남방 지역보다 우월하다는 ‘남방 담론’이 횡행했다.
성과 인종, 계급에 따라 각각에 맞는 단일한 정체성을 강요함으로써 이에 순응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우리’와 ‘적’으로 끊임없이 구분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증오를 체제의 원동력으로 삼는 파시즘의 패러다임이 작동된 것이다.
이런 구현원리는 박정희 독재 체제에서 변용 돼 살아 남았으며 신자유주의의 강고한 압력 속에서 양극화에 따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증오’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파시즘의 또 다른 얼굴은 ‘영웅숭배’다. 파시즘 혹은 대중독재 체제는 전통적 영웅부터 대중영웅, 종교적 성인을 총 망라한 ‘영웅 종합선물세트’를 제공하는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 받고 스펙터클을 열망하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임지헌 한양대 교수가 소장을 맡고 있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펴낸 ‘대중독재의 영웅만들기’는 박정희와 김일성, 마오쩌둥과 스탈린 프랑코 체제 하에서 양산된 영웅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공비에게 무참히 살해됐을 뿐이지만 이후 반공영웅이 된 이승복과, 치정관계로 살해됐지만 나치 돌격대의 우상으로 둔갑한 호르스트 베셀…….
아울러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오늘날 불고 있는 ‘이순신 열풍’의 위험성도 제기한다. 이순신 열풍은 공동체로부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원자화 된 한국인들의 불안감과, 경제전쟁의 시대에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게 복종하고 싶은 욕망의 복합체라는 것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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