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에서나 활력의 기본적 원천은 다양성이다. 사회의 다양성은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토양이라야 제대로 자란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세계적 획일성의 부작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획일적 규제로만 치닫는다. 특히 부동산이나 교육 시장의 다양성을 말살하기에 급급하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不) 정책에 집착하는 교육부는 급기야 대학입시의 논술고사 기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논술고사가 아닌 문제의 유형까지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대학별 논술고사가 이 기준에 위반하는지를 심의하는 논술심의위원회까지 구성해 국민의 세금을 쓸 계획이라 한다.
교육부총리 자신도 사석에서 언급했다지만 이런 기준이야말로 “외국 기자들이 보면 해외 토픽감”이 될 것이다. 사립대학에까지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는 사실에 접하면 더욱 놀랄 것이다.
사립대학의 비율이 80% 수준인 우리나라에선 고등교육을 주로 사립대학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공사(公私)의 구분이 아주 애매모호하다.
이번에 발표한 논술고사 기준을 위반한 대학에 대해서는 학생모집 정지, 예산 지원액 삭감 등의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논술고사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구술 면접고사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구술 면접고사 기준’을 또 만들 것인가.
우리처럼 정부가 사립대학에까지 간섭하는 나라가 없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게 맡긴다는 개혁의 방향을 설정하고, 국립대학도 독립행정법인으로 독립시켜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대학들이 흑자 경영을 했다는 소식이다.
언젠가 우리 대통령도 지적했지만 교육은 엄연한 산업이다. 표준산업분류에서는 교육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한다. “이제 대학도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해야 하는 산업적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지만, 논술고사 기준까지 제시하는 규제 일변도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국제적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정규교육 시장이 황폐해진 근본 원인은 정부 간섭으로 인해 교육시장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간섭 실패가 우리의 대학교육 시장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근본 문제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교육부의 눈치만 살피는 대학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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