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중과를 통한 투기 억제와 서울 송파ㆍ거여지구 200만평 택지개발 등 주택 공급 확대 의지가 반영된 부동산 종합 대책이 2달여간의 ‘산고(産苦)’ 끝에 지난달 31일 발표됐다.
대책 전부터 잔뜩 긴장해온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대책에 충격을 받은 채 위축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그동안 알려진 대책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대책을 주문했던 시민단체 및 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본지는 1일 이번 대책을 주도했던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를 초청, 부동산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 향후 과제 등을 집중 논의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대책 평가
▦원혜영 의장=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다방면의 연구를 거친 만큼 과거 대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정부도 그 동안 대증 요법식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번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관련 데이터가 없고 제대로 된 통계 하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가 반성할 게 많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2가구 이상 소유자가 얼마인지도 들쭉날쭉했다. 이번 대책에서는 정책을 수치화하고 과학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고가의 대형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 등 이른바 ‘집부자’들을 타깃으로 했다. 서민층은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강남과 분당 등의 고가 중ㆍ대형 평형의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이번 대책도 실패한 것이다.
▦고철 연구원장=참여정부 출범 이후 20여 차례 대책이 나왔는데 모두 실효성이 없었다. 이는 시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단편적인 대책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공급확대와 서민 주거안정, 거래 투명성 확보, 투기억제 등 수요와 공급 측면을 모두 아우른 장기적 안목의 대책이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공급이 확대되면 집값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제 부분이 크게 강화돼 양도세 중과 등을 피하기 위한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요억제책이 주택공급 위축과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는 건설부문 경기가 나빠지면 일용직 등 서민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세밀한 추가대책 마련에도 신경써야 한다.
▦김성배 교수=대책 발표 전에 청와대 관계자가 ‘헌법과 같이 바꾸기 어려운 정책을 만들겠다’는 말이 나온 만큼 혁신적인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대부분 그동안 건의되고 논의됐던 정책을 재조합해서 발표한 수준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다.
실거래가를 등기부등본에 기재하고,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은 거래 투명화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지방자치제가 정착된 상황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거둬 지방에 교부금 등으로 지급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서민 주거안정 부분에 있어서는 전세자금 지원 확대, 최초주택구입자금 지원 등 서민층의 주택마련을 적극 지원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치라 본다.
-시장 영향
▦고 원장=단기적으론 거품이 상당히 걷힐 것으로 기대된다. 20여만 가구에 달하는 다주택자의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가격은 내려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ㆍ장기적인 영향은 아직은 예단하기 이르다. 시장은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들 사이에서 ‘버티기형’과 ‘팔자’ 형으로 양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잠시 숨을 죽이고 기다려 보겠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투기억제 대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번 대책을 살펴보면 다주택자들이 투기꾼으로 몰릴 소지가 크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임대주택 공급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 다주택자가 모두 매물을 처분하면 서민들이 살 전ㆍ월세 주택이 줄어들 수 있다.
▦김 교수=이번 대책으로 6개월 이상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보유세가 상승할 때 그 상승분이 임대료에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주택 수요가 많은 강남권의 경우 보유자들이 늘어나는 세금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 늘어나는 세금을 임대료에 전가하면 고가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더라도 세부담이 없다.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집을 팔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러면 주택 가격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넘치는 부동자금은 언제든지 부동산 시장을 들쑤실 가능성을 갖고 있? 장기적으로 금리인상 등 금융부문에서의 후속 조치가 나와야 시장 안정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
-송파신도시 쟁점사항
▦고 원장=공급대책의 핵심카드로 제시된 송파신도시 건설은 해당 부처간 원만한 협의와 국ㆍ공유지를 얼마나 빨리 불하받아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느냐 등이 관건이다.
그동안 정부의 대책은 수요억제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번에 공급대책이 나온 것은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해제하고 군 관련 시설을 이전하는데 최소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부처간 협의를 거쳐 최대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후속 조치에서 마련돼야 한다.
▦원 의장=송파신도시는 신도시라기 보다는 강남 대체 주거지 성격이 강하다. 물론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있지만 이미 훼손 정도가 심한 곳을 택해 주택지로 개발한다면 환경 파괴 등의 논란은 크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와는 사전 의견 조율이 있었던 만큼 예상보다 빨리 사업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송파신도시가 도시 전체 관점에서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주택가격 급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안됐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 과거 대부분 택지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도시계획적 차원에서 개발되지 않고 부족한 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그린벨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도 필요하다. 보전 가치가 떨어지는 그린벨트를 풀어 그곳을 고소득 가구가 이주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단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원 의장=그린벨트에 고급 주거지가 개발돼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 친화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은 도심에 지어지는 것이 낫다. 서민들은 교통비 등 사회비용이 적은 직주 근접형의 주거가 바람직하다.
▦고 원장=동감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가진 자들을 위한 고급 주택지로 개발한다고 가정하면 일반 시민들의 정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
▦원 의장=이번 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금리인상 등의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정부나 여당, 재계 등 모두가 금리를 올리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금리인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금리 문제는 우리경제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경기 회복을 지켜보면서 검토돼야 한다. 다만 최근 발표된 여러 경제 지표를 보면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주고 있어 금리 인상의 여력도 커지고 있다.
▦김 교수=최근 수년간 부동산 급등은 금리는 낮은 데 시중유동성은 넘쳐 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려면 부동산 시장에 머물러 있는 부동자금이 다른 투자처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 금리를 올려 시중 자금을 빨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금리 인상폭이다.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정 수준의 인상이 필요하다.
-문제점과 보완과제
▦원 의장=부동산을 시장의 질서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 요구사항이다. 다음주 당정협의에서 이번 대책에 대한 사후 관리 등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책과 사후관리 통해서 부동산 투기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 또 분양가격을 낮추기위해 공영개발을 전면 도입하되 시장의 활력과 건설업체들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
▦고 원장=판교를 공영개발키로 한 것은 문제가 많다. 원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채권입찰제를 부활키로 한 상황에서 공영개발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어지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건설회사들이 개발사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중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 입법과정에서 세입자 등 서민들과 퇴직한 노령층 등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 교수=개발이익환수제의 일환으로 포함된 시설부담금제는 위헌 소지가 있다. 개발부담금은 미실현 이익에 대해 개발이익을 거둬들이는 방안이다. 기반시설부담금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면 개발부담금제도는 필요없다. 이는 이중규제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정리=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참석자 약력
▦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경기 부천, 54세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민주당 대변인, 부천시장(민선2ㆍ3기) 역임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 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
-전남 담양, 56세
-미 텍사스주립대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국토연구원 토지주택연구실장 역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운영위원, 경원대 겸임교수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부산, 49세
-미 하버드대 도시계획학 박사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국방부 자체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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