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첫 도읍으로 알려진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에는 ‘오녀산 산성 사적진열관’이 있다. 오녀산과 인근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는 일종의 박물관이다.
우뚝하고 웅장한 모습이 마치 고구려의 기상과 국력을 상징하는 듯한 오녀산 사진을 배경으로 이 진열관 입구에도 ‘머리말(前言)’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문헌에 흘승골성이라고 기재된 오녀산성은 오녀산 위에 자리잡은 중국 동북지구의 고대 소수민족 고구려가 창건한 초기의 수도이다. …오녀산성은 중국 북방 선주민들이 구축한 산성의 전통을 계승하여… 아주 특수한 산성 건축형식을 형성하였다.
중국 고대 성(城) 건축사에서 찬란한 한 페이지를 남겼다.’ 한사군을 물리치고 수(隋), 당(唐)과 싸운 보루였던 200 여개 고구려 산성, 그 성의 들여쌓기, 그랭이공법 등 독특한 축성법이 모두 중국 고대 문화사의 일부로 둔갑했다.
그 옆에 있는 ‘고구려사 중요 연표(高句麗重要史事年表)’는 중국의 왕조에 따라 고구려사를 분류하고, 중국사에 따라 고구려의 왕과 재위기간을 쓴 뒤, 중요 사실이라며 중국과 관련된 내용만 뽑아 적어 놓았다.
기원전 108년 한(漢)이 현도를 세워 기원전 82년 현도를 고구려현으로 옮겼으며, 바로 그 현도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지안(集安)시박물관처럼 고구려가 조공하고 책봉 받은 사실을 부각시켰다.
전시실 내 ‘고구려 건국(高句麗建國)’과 ‘현도군과 고구려 건국(玄菟郡與高句麗建國)’이라는 설명문은 이 연표의 부연 설명이다. ‘한 무제 원봉 3년 현도, 낙랑, 진번, 임둔 4군을 설립하였는데, 그 가운데 현도군 아래 고구려현이 설치되었다. 오녀산 주위 땅은 바로 고구려현에 속했다.
…기원전 37년 부여왕자 주몽이 졸본 지구에서 고구려를 세우고 오녀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구려 건국’) ‘고구려 왕은 (중국의)중앙정권이 내린 조복(朝服)을 받고 그 호적을 고구려 현령이 관장하였다. 여기서 고구려 민족정권과 중앙 왕조의 예속관계가 확립되었다.’(‘현도군과 고구려 건국’)
‘고구려는 중국 역사상 한부터 당까지 활약한 동북 소수민족이다. 중앙 왕조에 예속됐던 고구려 지방정권은 700년 남짓 존속하며 중국과 동북아 역사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맺는말(結束語)’이라는 마지막 안내문까지 중국은 이곳을 찾는 수많은 중국과 한국 방문객들에게 일관되게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선전하고 있었다.
환런=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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