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던 조류독감이 몽골, 카자흐스탄을 거쳐 시베리아로 확산돼 유럽 지역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조류독감이 다시 발생했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괴질은 40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 홍콩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돌이켜 보면 인류는 새로운 전염병의 위협에 항상 직면했고 또 극복해 왔다. 필자가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한국에서 개발한 과정은 이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도전과 응전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충격파를 던졌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계속 변종 하여 사람끼리 전파되는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럴 경우 최대 1억 명의 인명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세계 경제 대공황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위협에 대처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이 이러한 전염병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백신은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박멸했고 소아마비를 거의 퇴치했다. 신종 전염병 발생시 특효약이 없기 때문에 우선 고려되는 대응책이 백신이다.
백신은 보건복지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에서 차지하는 의의도 대단히 크다. 인류의 건강과 복지 향상을 위해서 의사는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고, 공중보건사업은 지역 공동체를 돌본다.
그런데 백신과 예방접종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특히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제 암, 당뇨병 등 난치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첨단 백신의 개발 노력도 가속화 되고 있으며, 그 만큼 백신 산업의 미래 성장 잠재력도 크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백신 산업은 지속적으로 쇄락의 길을 걸어 왔다. 10여 년 전 만해도 아시아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B형 간염 백신을 세계 세 번째로, 그리고 1990년에는 유행성출혈열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러나 일부 비판적 세력으로 인해 90년대 이후 우리의 백신 산업은 크게 후퇴했으며, 백신 자급률은 계속 감소하여 현재 10퍼센트 내외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했던 독감 백신 부족 사태를 우리나라도 언제든 맞을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백신의 경우 품귀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에게 백신을 수출하는 백신 생산국은 치명적인 독감 등의 대유행이 발생할 경우 당연히 생산된 백신을 자국에 우선 공급하게 될 것이다. 식량이나 석유의 경우와 같이 백신이 심각한 국가 경제, 안보의 문제로 대두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체의 백신 연구 개발과 생산 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백신 개발을 위한 국제 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의 본부를 유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에는 국경이 없다는 교훈을 사스와 조류독감을 통해 우리는 실감했다. 최근 독감 백신의 국산화와 백신 산업의 부활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세계 유일의 백신개발 국제 기구인 IVI를 십분 활용한다면 우리의 백신 안보를 확보하고 최고 수준의 백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호왕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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