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31일 청와대에서 중앙언론사의 논설ㆍ 해설 책임자 24명과 3시간 5분동안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고 연정론과 임기 단축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연정 제의 배경에 대해 “당신들(한나라당)의 지역주의 기득권을 내놔라, 그리고 흔들기만 하지 말고 책임을 져봐라는 얘기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나라당을 향해 “수비만 하는 팀에게 관중은 절대로 표를 주지 않는다”며 “응답을 하지 않는 한 정치적 수세국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노무현 캐릭터는 긴가민가가 없다”며 “말한 것은 책임진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요즘 읽고 있는 책으로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라는 책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쓴 이 책은 동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우파 대 좌파 등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접근법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책을 인용하면서 “기존의 합리주의 사고 틀로는 오늘 또는 미래의 문제에 부닥쳐 나가는 것이 굉장히 어렵겠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연정론 및 정치구조 개선
정치의 분열과 적대구도가 사회적 문화마저 대립과 갈등의 문화로 만들고 있어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정론을 제안했는데, 정치문화와 정치구도의 개선을 얻고자 한 것이다. 핵심은 선거구 제도다.
여소야대 정치구도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약체 정부를 의미하고, 그 시기 필요한 역사적 과제를 처리하는데 비효율적인 정치구조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중간평가를 하든 중간에 국민심판을 받든, 결판을 내는 것이 낫지 않나. 교착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여러가지 제도적, 정치문화적 대책이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에 그 때 가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및 선거일을 같아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내각제 개헌
핵심은 선거제도, 정치문화, 정치제도에 있는 것이다.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관계가 없이 고쳐야 되는 것이다. 잘못하면 정국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릴 우려가 있어 내각제에 대해서는 별 의견이 없다.
▦임기단축 문제
노태우 대통령이 중간평가를 얘기하면 위대한 결단이 됐던 시대가 있었다. 임기라는 것은 국민에게 보다 향상된 정치문화, 정치제도를 위해 누군가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필요해서 하면 결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책임으로 말할 수도 있다.
독일 슈뢰더 수상의 심기가 ‘내가 못 하는 것을 더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 “내 방법이 틀렸으면 다른 사람 시켜봐라”는 심리적 상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시대의 몇 가지 과오를 짊어지고 시대를 마감해 버리는 것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제도상 허용돼 있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다할 생각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입장
한나라당이 연정을 받지 않아서 매우 의외고,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연정이 싫으면 선거구 제도만이라도 좀 바꾸고, 정 하기 싫으면 일부 각료라도 내각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대통령더러 포용정치 하고 코드 정치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에 대한 답이 이것(연정)이다. 안받으면 그만이다는 자세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받겠다고 나오는 순간 나는 한발짝도 비켜서지 못한다. 자신 있으면 정권 잡아서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경제 분야
경제에 무관심한 대통령은 이 지상에서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할 수 없는 인간상을 우리 언론이 상정한 것이다. 허리케인 때문에 석유시설이 많이 파괴되니까 대통령이 당장 쫓아와서 석유 얘기부터 하지 않나. 부시대통령이 경제를 말할 줄 몰랐는데, 하지 않나.
대기업은 단군이래 최대 호황 누리고 있지 않나. 정말 대기업이 하자는 것을 내가 안 해준 게 거의 없다. 경제 문제를 갖고 나만큼 각료 및 전문가들과 회의를 많이 한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
성장동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치는 시장질서와 그를 위한 사회문화가 있어야 한다. 결국 대립과 갈등의 해소, 정치문화의 개혁이 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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