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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허리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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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허리케인

입력
200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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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 음악다방에서 이따금씩 듣던 노래 가운데 밥 딜런의 ‘허리케인’이 있었다. 흑인 복서의 이야기를 다룬 노래로 밥 딜런 특유의 비판ㆍ저항 의식이 묻어났다. 2000년 던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가 나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루빈 카터라는 실제 주인공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일본 만화 ‘내일의 조’를 옮긴 ‘허리케인 조’라는 장편 만화도 기억에 선명하다. 인간 ‘허리케인’의 강한 인상은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도 그랬지만 ‘허리케인’이란 말의 독특한 어감이 강하게 뇌리에 박힌 때문이다.

■‘허리케인’(Hurricane)은 ‘폭풍의 신’이나 ‘강풍’을 뜻하는 스페인ㆍ포르투갈어의 ‘우라칸’(Huracan)이 어원이다. 카리브해 연안의 원주민들이 쓰던 ‘Hunraken’ ‘Aracan’ 등의 말에서 나왔다. 발생 지역은 다르지만 같은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Typhoon)도 중국어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 간 말이다.

열대성 저기압은 지금도 조짐과 크기를 관측하고 진행방향을 예측할 뿐 정확한 발생 원인과 메커니즘은 밝히지 못한다. 무서운 어감의 말을 만들어 낸 옛사람들과 현대인의 차이는 두려움이 줄었다는 것 뿐이다.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위력 자체는 결코 줄지 않았다. 그제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타리나’는 상륙 직전 최상위 5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지만 최고 시속 216㎞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했다. 순간 초속 60㎙의 바람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50여명으로 알려진 사망자수는 역으로 대규모 대피 등 사전 대비의 주효를 확인시킨다. 그러나 멕시코만과 연안의 석유관련 시설과 주거지 피해, 미시시피주 곡창지대의 농작물 피해 등이 최종 집계되면 ‘카타리나’의 앙칼진 진면모가 드러날 것이다.

■지구 저쪽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올해는 태풍 소식도 뜸해서 선뜻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소용돌이 속으로 휘감아 드는 물살처럼 중심부의 저기압권으로 비구름이 빨려 들어가는 허리케인 사진에서 미감(美感)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멀게는 태풍 ‘사라’나 ‘셀마’, 가깝게는 ‘매미’가 남긴 상처를 잊고 있다가는 불쑥 닥쳐온 태풍이 날리는 강펀치에 얻어맞기 십상이다. 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상처는 작아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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