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2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 2005)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세계적인 다큐 감독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Leonard Retel Helmrichㆍ46)의 ‘달의 형상’이다. 손녀딸, 실업자인 아들과 함께 자카르타의 빈민촌에서 사는 인도네시아 과부 루미자드의 삶을 인터뷰나 내레이션 없이 오로지 영상만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2004년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과 2005년 선댄스 영화제 대상 등을 휩쓴 이 화제작의 국내 첫 상영에 맞춰 레텔 헴리히 감독이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29일 방한했다. “세계에 많은 다큐 영화제가 있지만 EIDF처럼 지상파 방송을 통해 출품작이 방영되는 경우는 없어요. 다큐멘터리와 팬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그는 국제 영화계에서 ‘싱글 샷 시네마’ 기법의 창시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싱글 샷 시네마’ 기법은 카메라를 앞 뒤로 움직이며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방식. 이 기법을 적용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득한 ‘달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달의 형상’을 촬영하기 위해서 1년간 주인공의 옆집에서 살며 매일 13시간씩 촬영을 했습니다. ”
그는 내년부터 루미자드 가족의 삶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시작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국가이지만 잊혀져 있는 나라에 가깝지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인데도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이들의 삶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원래 네덜란드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장편 ‘피닉스 미스터리’(1990)로 데뷔한 상업영화 감독이었다. “상업영화의 한계가 답답하게 여겨졌어요.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카메라 감독과 스토리 보드 구성작가도 해봤어요. 하지만 둘 다 제 의도를 작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예 감독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앞으로 다큐멘터리의 위상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람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무슨 장면이든 만들어 내는 영화의 ‘가상세계’에 이미 싫증을 내고 있습니다. 진짜 사건과 삶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다큐멘터리의 매력이자 가치입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