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인이 조세회피 지역에 소재한 펀드 등에 투자소득 지급할 경우 원천징수, 외국펀드는 3년 이내에 과세관청에 소득의 실질 귀속자임을 입증해야 세금 환급.’
새로 발표된 세금 계산하는 법이다. 조세회피 지역이 무엇인지, 펀드가 무엇인지, 소득의 실질 귀속자는 무엇인지, 또는 전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가는가. 물론 재테크에 능하거나 전문가라면 단번에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문외한은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마치 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전공을 바꿔 처음 수학과 전공 수업을 들어갔을 때 느끼는 이질감이라고나 할까.
콘그루언트 클라스라는 개념이 있다. 위상수학 교과서에 3쪽이나 되는 설명이 있는데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매우 고민했었다. 결국 알고 보니 고등학교때 배운 닮은꼴이었다. 어린시절 즐겨보던 공상과학 만화에서부터 스타워즈의 광선검에까지 등장하는 레이저는 또 무엇일까?
마치 신비의 마술처럼 느껴지는 이 레이저도 알고 보면 단순한 빛이다. 어렵게 말하면 ‘입사된 광자가 자발방출이 아닌 유도방출에 의한 광자를 방출하는 현상’이고, 쉽게 말하면 ‘빛에 쏘인 물질이 쏘인 빛과 동일한 방향과 색깔의 빛을 더하여 빛의 세기가 강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의 기계문명에서 레이저가 휴대폰의 열쇠고리에까지 쓰이는 것임을 생각하면, 아인슈타인급의 물리학자들만 이해하는 고도의 개념이 아니라 손에 닿는 개념이다. 우리 주변에 넘치는 어려운 단어·개념·이론들이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곳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나’도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라는 점에 자주 놀라게 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 ‘천재 노이로제’ 또는 ‘어려운 말 숭배’에 길들여진 것 같다. 무엇을 표현하더라도 어렵게 이해가지 않도록 표현해야 박수를 받고, 대단한 일을 하거나 천재로 취급 받는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공학·과학계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은 되도록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신문 뉴스에서 보게 되는, 정부단체나 경제단체의 발표도 거의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어의 표현 중에 “플레인 잉글리시(plain English)로 부탁해”라는 것이 있다. 해독하기 어려운 수학 식, 전공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용어 말고, 일반인의 언어로 말해달라는 뜻이다. 2000년 캘리포니아 공대의 한 교수가 발표하는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목성 표면에서 관측되는 난류(폭풍)를 컴퓨터로 재현한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1시간 넘게 걸린 발표 동안 수학식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발표는 한눈에 이해가 가는 동영상과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발표 후 발표자가 한 말이 감명 깊다. “수식 하나를 없애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고민과 노력 끝에 상응하는 설명을 만들어 내야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이었다.”
정보의 홍수 속을 살다 보면, 특히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에서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자신이 생업으로 삼지 않는 분야의 정보를 소화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생존하는 인간이다 보니, 그리고 그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최신의 정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을 해줘야 되는 것이 아닐까. 천재중의 천재라 불리는 아인슈타인에 따르더라도 과학자는 단순한 현상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표현한다면 “제발 쉽게 설명해줘, 안 쉬우면 화낼 거야” 정도가 되겠다. 필자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인터넷의 어느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