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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하얀 얼굴의 풋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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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하얀 얼굴의 풋밤

입력
2005.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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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을이 온 것은 아니지만, 가을 과일 중에 가장 첫머리에 있는 것이 감과 밤이다. 밤은 익으면 저절로 밤송이가 벌어지고 그 안에 붉은 알밤이 보인다. 그것을 ‘아람’이라고 하는데 밤이나 상수리 도토리가 나무에 매달린 채 충분히 익은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히 익은 밤이 밤송이 속에서 떨어질 준비가 다 된 상태를 ‘아람 불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우리는 부엉이가 밤나무에 와 방귀를 뀌어서 밤송이가 벌어지는 줄 알았다. 밤나무 산에 가니 밤이 더러 익은 것이 있더냐고 묻는 말도 ‘밤이 익었더냐?’고 묻지 않고 ‘부엉이가 방귀 뀌었더냐?’고 물었다.

때로는 밤이 아직 익기도 전 밤송이가 새파란 때 어른들 몰래 장대질 하거나 나무팔매질 하여 밤을 딸 때가 있다. 껍질도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를 두 발로 꼭 밟고 꼬챙이로 억지로 까면 그 안에 하얀 풋밤이 나온다. 바로 요즘에 따먹는 밤이다.

풋밤은 크든 작든 꼭 아기의 새로 나온 이 같다. 맛도 알밤보다 고소하지만 먹지 않고 주머니 안에 넣고 만지다가 가만히 꺼내 하얀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이 참 좋다. 오늘 아침 그 풋밤 생각이, 났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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