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59)가 베토벤과 함께 돌아왔다. 세계적 음반사 데카에서 올 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에 들어가 1차분으로 베토벤 중기 소나타(16~23번. CD 3장)를 내놓고 9월8일부터 한 달간 전국을 돌며 베토벤 소나타만으로 7차례 독주회를 한다.
‘피아노의 신약 성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흔히 그렇게 비유한다. 구약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다. 베토벤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썼다.
피아니스트는 누구나 이 산맥을 넘고 싶어하지만, 힘든 일. 현역 대가들 가운데 메이저 음반사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거나 녹음 중인 사람은 다니엘 바렌보임, 리처드 구드, 알프레드 브렌델 정도이고. 동양인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데카 레이블로는 1970년대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녹음 이후 30년 만이다.
‘집으로 돌아오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백건우는 이렇게 표현했다. “젊을 때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나라 여러 음악을 접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음악도 끝에 가서는 출발점인 바흐, 베토벤으로 돌아오게 되죠. 삶의 고통과 희열을 맛본 사람만이 베토벤을 이해할 수 있어요.”
전곡 녹음을 하면서 “인간 베토벤을 가까이서 만난 느낌”이라고 했다. “전부터 해온 곡이 아니라 처음 접하는 곡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번 음반에 해설을 쓴 젊은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백건우의 베토벤을 그렇게 평했다.
“베토벤 음악은 다채로워요. 흔히 심각하고 시커먼 음악인 줄 알지만, 실은 유머가 넘치고 위트도 많죠. 16번 소나타의 1악장 같은 건 아주 까불까불한 리듬으로 되어있고, ‘파스토랄’이나 10번 소나타는 베토벤답지 않은 평온함을 보이죠. 그의 성격도 그래요.
갑자기 화 냈다가 용서를 빌고, 하루 아침에 사랑에 빠졌다가, 외로워 했다가, 어린애 같았다가…. 베토벤 하면 엄격한 고전주의를 떠올리지만 제가 보기엔 로맨티스트 같아요.”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은 총 10장으로 완성된다. 이번 1차분은 이달 초 유럽에서 먼저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2차분(초기 소나타, 1~15번)은 내년 가을, 마지막 3차분(후기 소나타, 24~32번)은 2007년 나올 예정이다.
앞서 그는 라벨 피아노 작품과 협주곡 전집, 프로코피에프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집, 쇼팽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전집 등 음반을 냈다.
이러한 행보는 한 작곡가를 깊이 파고들며 순례를 계속하는 구도자적 기질을 보여준다. “젊을 때는 음악이나 작곡가가 도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부담감이 앞서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그 말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연주생활 30여년, 내년이면 환갑인 그는 느긋하고도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독주회 일정
9월8일 원주 치악예술회관, 9일 양산문에회관, 1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23일 호암아트홀, 10월 1일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10월 8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 프로그램=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 소나타 3번, 6번, 23번 ‘열정’ 문의 (02)598-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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