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후반기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텔레비젼에 나와 설명한 국정방침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후반기 국정방향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29%에 불과한 노 대통령의 지지도이다. 노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옳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왜 자신의 지지도가 29%에 불과한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성찰에 기초해 올바른 후반기 구상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 했다. 물론 노 대통령은 왜 자신의 지지도가 29%에 불과한가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에서 읽혀지는 것은 국민들이 자신의 업적과 진정성을 몰라준다는 원망, 그리고 이에는 수구언론에 책임이 있다는 원망이었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하게 해주는 것이 문제가 된 조기숙 청와대홍보수석의 발언이다.
●국민과 언론을 원망하다니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대통령은 21세기형으로 나가고 있는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지도자와 문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여간 위험한 신호가 아니다. 정권이 잘못되고 있다는 최고의 위험신호는 정권이 자신들은 잘 하고 있는데 이를 못 알아주는 국민이 문제라는 식으로 국민을 원망하는 것이다.
물론 조 수석의 분석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아니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이유의 근본에는 불필요하게 자극적이고 전투적인 언술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지난번 국가보안법 폐지 소동이 보여주듯이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 놓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빈 수레의 개혁’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탈 권위주의, 개혁성 등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점수를 주면서도 리더십에 대해서는 9%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62%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번 텔레비전 토론이야말로 왜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29%밖에 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오랜 만에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대통령이 기껏 한다는 것이 정권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니 어느 국민이 좋다고 하겠는가?
자신의 신임을 묻겠다, 정권의 반을 주겠다, 정권을 통째로 내주겠다는 식으로 심심하면 국민들을 협박하는 것이 21세기형 리더십이고 국민들이 이를 듣고 불안해 하는 것은 이들이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독재시대의 문화에 물들어 있다는 증거란 말인가?
처방도 매한가지다. 29%의 지지도에 대한 처방은 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묻는 것이나, 한나라당과의 연정과 같은 극약처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올바른 처방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의 개혁과 같은 잘못된 리더십 스타일 등 그간의 오류를 반성하고 외유내강의 리더십으로 조용하면서도 강한 개혁을 추진해 불안해 하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처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국민이 잘못이지 자신은 잘못한 것, 반성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화살 같이 맞는 한나라당
설상가상으로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노무현정부가 잘못 꿴 후반기의 첫 단추를 빨리 바로잡지 못하도록 한나라당이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이한구 의원이 노 대통령이 하야를 빨리 할수록 경제회생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망발을 한 것이다.
탄핵소동처럼 노 대통령이 3골짜리 자살골을 넣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10골짜리 자살골을 넣음으로써 여론의 비판에 의해 노무현정부가 자기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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