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29일 ‘친일 명단’을 발표했다. 그 현장에서 박남수 천도교 종의원의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천도교의 친일행적을 참회하는 성명서를 읽었다. 일본 강점기 시절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 린이 해방 후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형해 매국의 교훈으로 삼아달라”라고 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해방 후 처음 발표하는 이 성명서를 위해 천도교는 27일 교단 전체회의를 열었다. 원로급에서는 “당시 한국민의 30% 이상까지 교세를 확장했던 천도교는 총독부의 집중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친일단체를 결성하고, 군용기를 헌납했던 일은 어쩔 수 없었다”며 이번 성명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이날의 발표 장소에서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 종교적 양심을 지키기에 가장 적합하다는데 중론이 모아졌다.
그 현장에는 다른 종교의 대표도 나왔어야 했다. 일부 종교 관계자들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교리까지 무시하며 당시 일왕을 위해 매일 아침 동쪽을 향해 절을 했다. 또다른 교계의 경우 전국 각지의 중간 지도자들을 일제의 허가를 얻어 임명했고, 중일전쟁 당시에는 일제를 위해 군수품과 군자금을 댔다.
이들은 해방 이후 한번도 이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종교적으로 지극히 세력이 미미한 일본의 기독교는 1967년 “국가가 범죄에 빠졌을 때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일요일이면 한 두 블록 건너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나라, 전국 웬만한 산마다 사찰과 불상이 모셔져 있는 나라. 이들의 역사적ㆍ사회적 책임은 천도교에 비해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천도교의 결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신기해 사회부 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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