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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이즈미는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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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이즈미는 부럽지 않다

입력
2005.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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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원을 해산한 다음날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집무실에서 파키스탄의 쇼카트 아지즈 총리와 만났다. 고이즈미 총리는 갈릴레이 갈리레오와 민주주의 얘기로 열변을 토하며 “그래도 우정개혁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경제지원을 부탁하러 온 군사독재국가의 총리는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최근에는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총리가 반대파에 대한 유화책을 권유하자 “(철저한 보복은) 전국(戰國)시대의 관례”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자단에게는 애독서라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개혁과정을 그린 ‘노부나가의 관(棺)’이라는 책을 권하기도 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선구적 과학자가 됐다가, 천하를 통일한 전국시대 무장이 됐다가 하는 게 요즘 고이즈미 총리의 심정인 모양이다.

이쯤 되면 기분이 ‘업(Up)’된 수준을 너머 자기도취에 빠진 것 같다. 최고권력자로선 금기시해야 할 상태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지지율은 치솟았고, 이코노미스트 같은 서구 언론들이 ‘용감한 고이즈미’ 등의 제목으로 커버스토리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무현 대통령도 24일 기자간담회에서 그에 대해 “참 부럽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온 몸을 던지는 승부수를 구사할 수 있는데, 한국의 대통령은 제도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취지였다. 고이즈미류(流)는 정말 부러워할 만한 정치스타일인가.

지금 일본 정계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부르는 매스컴 용어들이 많다. 그 가운데 ‘고이즈미 매직(마술)’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신비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리를 밝히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속임수라는 뜻에서다. 우정개혁 법안 처리에 모든 것을 건 전략을 일본 평론가는 ‘일점돌파 전면전개(一点突破 全面展開)’의 개혁전략이라고 미화했다.

하지만 실체는 위기를 감추기 위한 분식전략에 가깝다고 본다. 임기 동안의 실책들을 한번의 승부수로 모두 만회하겠다는 것, 다시 말해 ‘원 펀치(한 방) 정치’이다.

고이즈미 정권은 4월에 출범 만4년이 지난 장수정권이다. 역대 최장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정권은 오키나와 반환, 2위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정권은 국가 재건 및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대표 업적이 있다. 하지만 그에겐 뚜렷이 내세울 것이 없었다.

도리어 복지와 재정 면에선 큰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우정개혁 표결 전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일본인들은 언제나 시급한 개혁과제로 연금복지제도를 꼽았다. 보험료 미납으로 제도자체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을 뿐 아니라, 2007년에는 베이비 부머인 이른바 단카이(團塊)세대가 대거 은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의 국가채무는 임기 동안 역대정권 최고인 165조엔이나 불어나 올해 말이면 국채잔고가 774조엔에 달할 전망이다. 최근까지 고이즈미 정권의 처지는 도리어 동정을 받아 마땅한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참의원에서의 법안 부결사태가 단번에 모든 상황을 역전시켰다. 우정 민영화가 개혁의 출발이자 몸통이라는 호소가 유권자에게 먹혀 들고 있다.

반면 시야가 좁은 구태 정치인들은 총리를 매장하려다 도리어 덫에 걸려 반개혁의 상징이 됐고, 정계은퇴로 내몰리고 있다. 대책 없이 부채는 늘어가고 고이즈미 총리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잡아떼지만 유권자들은 마술에 마취돼 있다.

고이즈미류 정치는 사절하고 싶다. 할아버지가 일제 때 우정성 대신이고, 아버지의 지역구를 세습한 그가 자민당 파벌체제를 부수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것부터 공허하게 들린다.

수년간의 정책 실패를 한번의 정치 도박으로 만회하는 것보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솔직하게 고민하는 정치가 좋다. 온 몸을 던지는 승부수는 얼마 전 우리도 겪어보았다. 그래서 정말 부럽지 않다.

국제부장 유승우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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